잠 잘 때 가위눌림, ‘유전‧기면증’ 원인…"수면제 복용 금물"

잠 잘 때 가위눌림, ‘유전‧기면증’ 원인…"수면제 복용 금물"

만성적 수면마비 경우 약물, 정신치료 필요

기사승인 2019-10-25 04:00:00

# 직장인 A씨는 지난밤에도 가위에 눌려 잠을 설쳤다. 학창시절 땐 귀신 꿈을 꾸었다던 친구들의 경험담만 들었지 실제로 눌려본 적이 없었는데, 일을 하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1년에 한두 번 겪기 시작하던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한 달에 1~2번, 1주에 1~2번으로 횟수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말했던 것처럼 귀신 등 무서운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숨이 막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잠들기가 두려울 정도다.

건강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수면장애’ 질환으로 요양기관을 방문한 환자는 지난해 기준 57만명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환자수가 2014년 42만명에서 연평균 8.1%씩 증가했으며, 특히 겨울 전후 환절기인 10월과 3월에 환자가 크게 늘었다. 

흔히 '가위에 눌렸다'고 표현하는 수면장애 증상은 수면 중 골격근의 마비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급격히 시작돼 1~4분 정도 지속하고 급격히 또는 서서히 끝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소리를 듣거나 신체를 누군가 만지면 이러한 현상에서 쉽게 벗어나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수면마비’라고 표현한다.

수면마비는 전체 인구의 15~40%에서 일생에 한 번 이상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다른 증상과 동반되지 않으면서 일시적인 경우가 많은데, 가족력이 있거나 기면증이 있다면 만성화 경과를 밟는다. 보통 6개월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만성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수면마비가 나타나는 이유는 꿈꾸는 수면 단계, 즉 렘수면(REM sleep) 단계에서 비정상적으로 각성되기 때문이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꿈을 꾸되 꿈의 내용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호흡이나 생명에 필수적인 기관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근육을 마비시키는데, 정상적인 수면에서는 렘수면에서 빠져나와 비렘수면(non-REM sleep) 단계로 갔다가 깨어나게 돼 수면마비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정상적으로 렘수면에서 바로 각성이 되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마비 증상이 나타나고 질식감을 느끼는 것이다. 귀신을 보는 것 같은 환각 증상은 꿈이 각성상태까지 잠시 연장돼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골격근이 마비돼도 눈의 근육과 호흡근육은 보존되어 있어 눈은 움직일 수 있다.

원인은 수면부족, 불규칙한 생활리듬, 과도한 음주, 수면제 등의 약물 과다 복용 등으로 다양하다. 스트레스, 강한 시청각적 자극 등으로 인해서도 나타날 수 있다.

윤호경 고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다른 장애와 관련되지 않고, 다른 증상과 동반되지 않으면서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며 “만성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가족력이 있거나 기면증이 있다면 증상이 자주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가족형(familial form) 수면마비’는 문헌에 몇 개의 사례가 보고될 정도로 발생 비율이 매우 낮다. 따라서 수면마비 증상이 만성적으로 나타날 경우, 기면증의 하나의 증상으로 의심해볼 수 있다. 기면증 환자의 20~40%에서 수면마비를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면증은 뇌하수체의 하이포크레틴이라는 물질의 부족으로 인해 수면-각성기전의 기능부전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주간의 졸리움과 비정상적인 렘수면의 발현으로 인해 나타나는 탈력발작 및 수면마비, 그리고 수면이 시작되거나 끝날 때 나타나는 환각 등의 증상으로 표현되는 신경학적 장애이다.

윤 교수는 “가족형과 기면증 수면마비는 일반적인 수면마비와 다르게 수면의 시작 부분에서 가위눌림을 경험하는 수가 많다. 이에 따라 가족형의 경우도 기면증과 공통되는 병리적 과정을 갖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가족형과 기면증에 수반된 경우에는 수면마비 증상이 만성화 경과를 밟는다”고 말했다.

그는 “질식감, 환각 등 수면마비 증상은 일시적이고 별다른 후유증 없이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가 크게 필요하진 않다”며 “다만 불규칙한 수면 습관, 수면부족, 잦은 음주, 시차여행과 같은 수면-각성 주기의 교란을 일으키는 상태에서 쉽게 유발되기 때문에 생활습관 교정과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성적으로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면 렘수면 단계에 작용하는 약물을 사용해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이 경우는 대개 심한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는 등 심리적 문제가 원인이 될 수 있어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며 “수면제 등을 함부로 복용할 경우 증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니 심하다면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박선영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장애는 다양한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며, 따라서 전문 의사의 문진이 필요하다”면서 “원인 파악과 진단을 위해서는 야간수면다원검사가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야간수면다원검사는 수면의 양과 질, 수면장애의 다양한 증상을 측정할 수 있는 검사도구들이 갖춰진 수면검사실에서 실제로 자면서, 수면상태에 대한 종합적인 검사를 시행한다”고 덧붙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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