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구충제 부작용 우려에도 암환자 제지 못한다

강아지 구충제 부작용 우려에도 암환자 제지 못한다

사람 대상 임상 결과 없고 개인 SNS 컨트롤 어려워

기사승인 2019-10-30 04:00:00

환자 “내가 개도 아닌데 왜 먹겠나…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식약처 “펜벤다졸 안전성 확인 등 임상 계획은 없어”

 

“펜벤다졸 4주차 복용. 통증이 반으로 줄었고 혈액검사 정상으로 나옴. 여러분의 기도와 격려 감사합니다.”

지난 28일 폐암 투병 중인 개그맨 김철민이 동물용 구충제인 ‘펜벤다졸’ 복용 후 효과를 봤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보건당국이 펜벤다졸 복용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효과를 봤다는 경험담이 이어지면서 암환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 SNS 등을 통해 일파만파 퍼져도 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한정돼 있어, 암환자들의 펜벤다졸 복용을 막긴 어려운 상황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펜벤다졸은 최근까지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가 없다. 오히려 간 종양을 촉진시킨다는 동물실험 결과 등 상반된 보고가 있는 상태다.

펜벤다졸이 항암제로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유튜브 채널에서 미국의 한 남성이 강아지 구충제를 먹고 폐암이 완치됐다는 내용의 영상을 공개한 이후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항암제를 포함한 모든 의약품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 입증해야 한다. 항암제와 함께 구충제를 복용하는 경우, 항암제와 구충제 간의 약물상호작용으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본인이 느끼기에 몸이 좋아졌다고 해서 약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환자가 구충제만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항암제나 의약품을 복용했을 텐데 정말 해당 물질에 의해 병이 완치됐는지 확인하려면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검증해야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펜벤다졸 치료는 민간요법으로 활용되던 ‘차가버섯’ 치료처럼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설명자료 배포 등을 통해 약물의 인체 유해성만 알릴 수 있을 뿐, 판매 단속 등의 제재는 못한다. 약사법에 따라 펜벤다졸은 동물용 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소관부처가 농림축산식품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펜벤다졸을 복용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식약처는 사람용 의약품만 관리·감독할 수 있어 접근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개인 SNS에 경험담을 게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권한도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판매 목적으로 펜벤다졸을 홍보한다거나 효과를 표방한다면 단속할 수 있지만, 본인이 경험한 일들을 개인 SNS에 올리는 것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며 “우리 처가 할 수 있는 건 암 전문의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홍보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식약처의 권고가 암환자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펜벤다졸이 품절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해외 직거래 또는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약을 구하는 환자들도 늘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식약처 국정감사에서는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펜벤다졸 성분 의약품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21% 증가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더라도 펜벤다졸 판매를 중지하지 말라는 청원과 암치료에 대한 임상시험을 시작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한 환자는 “처음에 주변에서 개 구충제를 권유했을 땐 내가 개도 아니고 그걸 먹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가족들도 어렵게 약을 구했다고 하고, 암세포 크기는 또 커졌다고 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먹기 시작했다. 이 구충제는 나와 내 가족들의 마지막 희망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식약처는 사람을 대상으로 펜벤다졸의 안전성, 효과성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항암제는 신물질을 발견하면 암세포 실험과 동물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인한다. 이어 사람에서 안전한 용량을 확인하기 위해 1상 시험을 하고, 여기서 자료가 모아지면 암의 종류별로 효과를 확인하는 2상 시험을 거친다. 이후 기존 항암제와 비교하는 3상 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됐을 때 시판을 하게 된다. 이 과정만 하더라도 상당한 비용이 소요 되고, 기간도 수년 이상 걸리는데,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식약처 관계자는 “항암제는 개발과정에서 일부 환자에게 탁월하게 효과를 나타내도 최종 임상시험 결과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극히 일부 세포실험에서 효과가 있다고 한 것을 가지고 리스크를 감당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가정의학 전문의)는 “펜벤다졸 관련 문헌을 모두 검색해보니 10편 정도에 불과했다. 이를 가지고 임상시험을 통해 약을 개발할 가능성은 있다”며 “그러나 임상시험 과정을 보면, 5000개에서 1만개였던 후보물질들이 전임상단계에서 250개로 줄고, 1상 임상에 들어가면 9개로 줄고, 최종적으로 효과가 확인되는 물질은 1개 정도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명 교수는 “임상시험을 안 했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건강을 더 해치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구충제 복용을 고려하는 환자는 꼭 주치의와 상담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고 조언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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