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0일 오전 10시 본회의를 열고, 239개 상정법안 중 16개(6.7%) 만을 처리한 후 문을 닫았다. 오후 2시에 다시 문을 열자던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대로 정기국회를 끝내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정당들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며 회의를 거듭하지만, 본회의 재개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가운데 국회와 정치권을 향한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는 분위기다.
◇“‘민식이·하준이법’ 통과됐다” vs “‘민식이·하준이법’만 통과했다”
국회는 10일 오전 10시 제371회 정기국회 본회의를 열어 통칭 ‘어린이생명안전법’으로 불리는 6개 법안 중 ‘민식이법’으로 묶인 특별범죄가중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 ‘하준이법’으로 불리는 주차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밖에 양정숙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선출안, 레바논(동명부대)·남수단(한빛부대)·소말리아(청해부대)·아랍에미리트(아크부대)로 파견간 국군 4개 부대의 파병연장 동의안,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스위스·아랍에미리트·싱가포르·우루과이·카자흐스탄 등 타국과 맺은 협정의 비준동의안도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이들 16개 법안이 이날 오전 1시간동안 통과된 법안의 전부다. 법안처리과정을 직관한 어린이교통사고 피해가족 중 김민식군 부모들은 “법안통과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앞으로 다치거나 사망하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한다”면서도 “어린이생명안전 관련법 중 ‘해인이법’과 ‘태호·유찬이법’이 남았다. 남은 법안도 20대 국회에서 챙겨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유상진 정의당 대변인도 “오늘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관리를 강화한 ‘태호·유찬이법’, 어린이 통학차량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한 ‘한음이법’, 어린이 안전사고에 대한 응급조치를 의무화한 ‘해인이법’은 여전히 상정되지 못했다”면서 “정의당은 나머지 어린이생명안전법안들도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하준 군의 어머니인 고유미씨도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을 통해 민식이·하준이법 통과에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해인이법과 태호·유찬이법, 한음이법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국회는 민생법안을 처리했다고 얘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민생법안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 “아직 민생법안 남았다” vs “20대 정기국회 마친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 중 어린아이의 이름을 딴 법안이 하나 더 있다. 일명 ‘재윤이법’으로 불리는 환자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해당법안의 주인공인 김재윤군은 수면진정제 과다투여 후 골수검사를 받다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 검찰이 재수사를 지시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재윤이 사건처럼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 등이 의무적으로 관련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는 등 비쟁점 민생법안들이 국회의 정쟁에 묶여 아직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처리를 위한 회의 속행을 거듭 촉구했다.
문제는 해당법안의 본회의 상정순서는 192번째였으며, 지난 11월 29일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던 법안으로 정기국회 내 통과가 요원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한국당은 정기국회 본회의를 여기서 끝내겠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이만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일명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울러 한국당이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에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명백한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며 민주당을 향해 오히려 “국민을 기만하고 민생법안을 볼모로 삼은데 공식 사죄해야한다”고 주장하기 바빴다.
나아가 “오늘로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회기를 마친다”며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 맡겨야겠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국민의 질타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겸허한 자세로 반성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소임일 것”이라고 말하며 사실상 정기국회를 마무리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정치평론가이기도 한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국회가 민생은 뒷전이고 밥그릇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 또한 “국회의 존재이유는 국가와 민생, 국민과 국익을 위해 합의되고 처리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라며 “일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채 의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편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막판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혹시나 열릴지 모를 본회의를 위해 오후 5시30분경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길어지는 협상에 오후 8시경 다시 본회의를 속개하겠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개의가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