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기가 있었던 걸까, 배려가 부족했던 걸까. 그룹 엑소 멤버 첸의 결혼발표를 둘러싼 팬들의 갑론을박이 며칠 째 뜨겁다. 혹자는 아이돌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자연인’ 김종대(첸 본명)의 삶도 응원한다며 축하를 보내지만, 반대편에선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팀에도 피해를 끼쳤다’는 불만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첸이 “축복이 찾아왔다”고 2세를 암시하자, 팬들 사이에선 ‘혼전임신 아이돌이 웬 말이냐’며 그를 엑소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다.
#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김희철은 이달 초 후배 가수와의 교제 사실이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한 팬이 SNS에 올린 글에 따르면 김희철은 열애 인정 후 첫 예능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자신을 보러온 팬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올해로 데뷔 16년 차인 그이지만 공개연애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데뷔 초부터 나를 사랑해준 팬들이 있는데, 그 팬들한테 상처를 주면 안 되니까”(TV조선 ‘땡철이 어디가’)라며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조심해온 덕분이다.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에게 ‘연애 금지령’을 내리고 그것이 방송 등 매체를 통해 공공연하게 알려졌던 수 년 전과 비교하면 분명 나아졌지만, 아이돌에게 공개 연애는 여전히 치명타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팬덤의 이탈” 때문에 소속 연예인들의 공개 연애를 꺼린다고 말했다. 김희철의 표현처럼 아이돌의 연애는 팬들에게 ‘상처’가 되고, 또한 때론 ‘기만’이 되기도 한다. 슈퍼주니어 멤버 성민은 뮤지컬 배우 김사은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팬들의 호소를 차단하고 팀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독단적인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수년 간 슈퍼주니어 팬들에게 보이콧 당하고 있다.
연예계는 이성보다 감성에 지배당하는 곳이다. 아이돌 스타들은 교제 사실을 밝힐 때에도 자신의 팀과 팬들을 향한 진정성을 ‘검증’ 받아야 한다. 첸이 결혼을 알리기 위해 자필 편지를 올리고도 비판 받은 건, 그의 글에 팬들을 향한 사과가 빠졌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반면 김희철은 연애를 인정하고도 팬덤의 결속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팬들을 염려하고 그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인정 받아서다.
이들에게 사랑의 선포는 이해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이다. 반대로 팬들에게 우상의 공개 연애는 그들 사이 유대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기다. 2년 전 두 아이돌 가수가 소속사의 공식입장을 뒤집고 교제 사실을 직접 알렸을 당시, 온라인에서 ‘명문’으로 회자된 어느 팬의 글엔 이런 구절이 있다. “(팬들이 분노한 원인은) 연애라는 표상으로 나타났을 뿐 본질은 우리가 형성한(했다고 생각한) 라포가 깨졌기 때문이다.”
이 비극의 시작엔 공과 사의 구분이 희미한 아이돌 산업의 특수성이 있다. 능력이 아닌 사람 그 자체가 상품이 되는 아이돌 시장에서, 연애로 위시되는 개인의 사생활이 존중받을 여지는 지극히 낮다. 사생활에 대한 구속이 곧 ‘상품성 관리’로 이어져서다. 뿐만 아니라 사생활은 때론 재화로써 판매된다. 기획사와 매체들이 제공하는 콘텐츠는 점점 더 실제 아이돌의 사생활처럼 느껴지도록 기획되고, 팬들과 아이돌이 서로에게 느끼는 유대엔 온도 차가 생겨난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SNS를 통해 “팬들에게 ‘누가 그 정도로 좋아하랬냐’, ‘그들도 인간이다’라고 말을 할 때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그들’을 어떻게 서비스로서 제공해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노래가 하고 싶어서 아이돌이 됐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자리가 내세우는 것은 애교, 연인 모드의 행위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자리”라면서 “이 특성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한국 아이돌 산업의 셀링 포인트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지 ‘판 것’을 구입한 소비자를 탓할 수는 없다”고 짚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 사진=박태현 기자, TV조선 ‘땡철이 어디가’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