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3명 중 1명은 약물로 조절 안 되는 ‘난치성’

‘뇌전증’, 3명 중 1명은 약물로 조절 안 되는 ‘난치성’

원인 다양한데 인식 부족…치료뿐 아니 환자 안전에 대한 지원도 배제

기사승인 2020-02-10 01:00:00

“현재 먹는 약으로도 조절이 안 돼 하루에 5~6회의 대발작이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복용 가능한 약이 없습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어 현재 먹는 약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처럼 기존 약제로 경련이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환자들에게는 새로운 약 밖에는 기댈 곳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조민규 기자 =후천적 사고로 지적장애와 함께 뇌전증을 얻게 된 아들을 두고 있는 김모씨(남, 50대)는 중증의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뇌전증은 다양한 원인과 복합적인 발병으로 인해 발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이다. 국내에는 약 36만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원인은 워낙 다양해 머리를 다치는 사고나 뇌수술로 인한 후유증도 뇌전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주요 증상에는 발작이 있는데 일시적으로 특정 뇌 부위의 뇌세포들이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억제력이 약해져 균형이 깨지고 조절능력이 상실돼 갑작스럽게 발생한다. 대부분의 발작은 짧고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시에는 자세한 병력 조사뿐만 아니라, 뇌파검사 또는 MRI·CT 등 신경영상을 시행해 질환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대책을 세우게 된다. 

김씨는 아이가 한창 증상이 심할 때 하루에 대발작이 40회 달할 정도로 심했다며, 약물치료는 물론 식이요법·수술 등 국내에서 시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치료는 시도해봤다고 전했다. 약물로도 조절이 되지 않아 수술을 받았고, 수술 직후 2개월 정도는 발작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이내 다시 발생한 것이다. 

◈ 국내 환자 3명 중 1명은, 약물 난치성 뇌전증

뇌전증 장애인은 원칙적으로 일차적인 약물 치료를 시행함으로써 일정 기간 적절한 약물 치료를 통해 발작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치료약물에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 비율 역시 상당한 상황이다. 대한뇌전증학회가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연구 중간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국내 약물 난치성 뇌전증 장애인은 약 10만명에 달한다. 

연구에 따르면 국내 뇌전증 장애인 중 30% 이상은 2가지 이상 약물 치료에도 발작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에 해당한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 장애인은 지속되는 발작으로 인해 뇌손상, 인지기능 저하, 심장 이상 등의 심각한 합병증과 더불어 급작스럽게 사망할 위험까지 지니고 있다. 때문에 기존 약물로 2년 혹은 5년 이상 발작이 나타나지 않는 발작소실에 이르지 못하면, 용량을 늘려보거나 혹은 새로운 약물을 추가하거나 대체하면서 장기간 복용하게 된다. 

김기중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 치료에는 수술이나, 신경자극 등이 고려될 수 있으나, 기본은 약물 치료"라며 "환자 마다 원인도 다양하고 경련 양상이나 정도가 다 달라서 개별 환자에 적합한 약과 용량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적합한 약이 없어 고통받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가 전체 뇌전증 환자 3명 중 1명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소한 이런 환자들에게만이라도 외국에서 쓸 수 있는 치료제들을 한국에서도 사용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 난치성 환자에 대한 치료 및 사회적 지원 절실

중증환자이다 보니 환자도 환자이지만 십 년 이상 환자를 보살펴온 가족의 고통 역시 말로 하기 힘들다. 김씨의 자녀의 경우 예고 없이 대발작이 발생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24시간 붙어있어야 한다. 사회생활 포기는 물론이고 잠을 자는 중간에도 발생하기 때문에 충분히 수면조차 취할 수 없는 일상이 십여년 동안 이어졌다.

김씨는 “뇌전증에 대한 인식이 낮다보니,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병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질환에 대한 고정관념이 쉽게 바뀌지 않고,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어 환자나 환자가족의 고통에 대해 관심이 적어지고, 다른 질환들은 기본적으로 받는 지원에서도 뇌전증은 배제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치료에 대한 지원이 미비하다. 약물 난치성 뇌전증의 경우 산정특례 적용으로 치료비 경감 혜택이 있지만 등록 기준이 엄격해 산정특례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질환과 달리 뇌전증은 환자 안전에 대한 지원도 전무하다며 ‘장애활동지원사’라는 제도가 있지만 뇌전증에 특화된 것도 아니며, 대발작으로 부상이 발생됐을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어서 뇌전증 환자는 잘 맡으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실효성이 적다고 설명했다. 

“대발작으로 인한 부상의 위험 때문에 외부에서 이동을 할 때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데, 그런 휠체어조차 지원받지 못합니다. 뇌성마비나 뇌병변 환자에는 지원이 되는데, 정작 뇌전증 환자는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그는 위탁보호시설(Day care)같은 곳만 가더라도, 지적 장애인은 이용이 가능하지만 뇌전증 환자는 이용하지 못한다며 ‘시설입소에서 거부당하기 일쑤’라고 탄식했다.

한편 매년 2월 둘째 주 월요일은 세계뇌전증협회(IBE)와 세계뇌전증퇴치연맹(ILAE)이 지정한 ‘세계뇌전증의 날’(Internatiional Epilepsy Day)이다. 세계뇌전증협회는 이를 기념해 매년 질환에 대한 바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해 환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에는 아트 공모전을 비롯해 뇌전증 장애인이 SNS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 질환에 대해 사회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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