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법 무시 다국적기업에 국민연금 투자 거둬라”

[단독] “국내법 무시 다국적기업에 국민연금 투자 거둬라”

루벤 코르티나 의장·알케 보스시거 사무부총장 단독 인터뷰… “노동 가치 제대로 평가돼야”

기사승인 2020-02-22 00:01:00

[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거듭 말하지만 우린 전 세계 120개국에 2000만 명의 조합원이 있다.”

21일 오전 국회 정론관. 국제사무금IT서비스노조연합(이하 UNI)의 알케 보스시거 사무부총장의 말. 그는 기자회견 말미 마이크를 다시 잡고는 낮고 강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제약·의료기기를 비롯 여러 업종의 다국적기업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지난 19일 밤 UNI의 루벤 코르티나 의장과 보스시거 사무부총장이 방한했다. 이들의 방문은 오라클과 프레제니우스의 노사갈등에 국제노동기구가 주목하고 있음을 반증한다(이 사연은 추후 다시 전한다). 쿠키뉴스는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이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코르티나 의장과 보스시거 사무부총장은 기자에게 “국민연금기금은 노동권을 무시하는 다국적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인터뷰는 국제노동기구가 바라본 한국의 노동시장과 그들의 제언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원론적 해답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매우 자주 교과서적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하고, 국내 노사갈등은 대개 원칙의 파괴 때문에 생긴다는 점을 내건다. 이를 국제 노동운동가의 입을 통해 꼭 한번쯤은 짚고 싶었다. 노동 존중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가치가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이들의 선언적 말로 되새기자는 취지다. 어쨌든 인터뷰의 내용은 무거웠지만, 코르티나 의장은 종종 장난스런 표정을 지어 인터뷰어를 즐겁게 했다. 통역은 유니-한국협의회의 최정식 이사의 도움을 받았다. 

◇ 韓 공적연기금 투자 원칙에 ‘노동’이 빠졌다

- 첫 방한이다. 

(루벤 코르티나 의장) 마침 일본 UNI 협의회의 2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한국 내 다국적기업의 문제가 많아 사안 확인 및 대책을 마련하려고 곧장 한국으로 왔다.”  

(알케 보스시거 사무부총장) 10년 가량 왕래해왔는데 노동 운동이 크게 진보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조 조합원의 수가 늘어났고, 활동이 강력해져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괄목할 만하다. 특히 헬스케어 노동(돌봄 노동을 포함)에 대한 고무적 현상이 있는 것 같았다.” 

- 말이 나온 김에 헬스케어 노동의 중요성에 비해 한국을 비롯해 각국의 노동 현장은 열악하지 않나.

(보스시거) 전 세계적 현상인 고령화 때문에 헬스케어 노동 수요가 커지고 있다. 돌봄은 노약자를 위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한국은 간호인력 등 돌봄 노동자가 일손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보상과 존중이 주어지지 않으면 노동의 질은 하락한다. (보건당국과 사용자는) 이들의 노력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

- 큰 틀에서 접근해보자. UNI는 한국 노동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코르티나) 한국의 노조사는 경제 성장과 맞물려 있다. 난 한국 노동자들이 미래노동시장으로의 변화에 맞대응하려는 열정이 흥미롭다. 오랜 전통의 기존노조와 신생노조 사이에 연대도 활발한 것 같다. 그러나 국제화 추세에서 한국의 노동 활동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식이 요구된다.”

- 새로운 직종의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지만 그들의 ‘스피커’는 많지 않다. 알다시피 한국은 노조 활동에 상당히 경색돼 있기도 하고. 

(코르티나) 세계의 경제 시스템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노동자 스스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찾아야 한다. 아르헨티나의 사례에 견줘 생각해보면, 아르헨티나의 노조 조직률은 39~42% 가량 된다. 강력한 노조 활동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이기적’이라는 비판이 아르헨티나 내부에서도 존재한다. 현 우파 정부에서 지난해 비정규직이 급격히 증가했다. 기존 노조-정규직 중심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많이 수용하지 못했다. 한달 전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사회경제총연합단체’가 조직됐다. 200만 명이 가입했다. 정규직 중심의 노조 운동에 비판적 대안을 제기하기 위해 조직됐다.”

- 그러면 플랫폼 노동은 어떤가. 사회보장 사각지대에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서구에서도 아직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보스시거) UNI의 강력한 입장은 모든 노동자의 기본 노동권, 특히 결사의 자유는 노동자라면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은 곧 그 사회가 불평등하고 불안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와 의회는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보장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누구나 보편적 사회보장을 받아야 한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들은 속한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하지 않나.”

(여기까지 말했을 때 보스시거 사무부총장은 다소 흥분한 듯 했다. 말을 끊지 않고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하나 더! 노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 신체적으로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이들의 노동 가치를 낮게 여긴다. 경영자가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혀도 책임을 지지도, 경제적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 우린 노동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해야 한다. 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 한국도 나아졌다지만 전반적으로 아시아의 노동환경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다.  

(보스시거) 가장 큰 문제는 불공정한 구조다. 예를 들면, 외국 자본은 필리핀에 콜센터를 많이 세우고 있다. 영어 구사가 되면서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다. 필리핀 콜센터 노동자들은 본사 노동자와의 연대를 고려해야 한다. 아직 아시아에는 개발도상국이 있기 때문에 외국 자본 유입이 많다. 자본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국제 노동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이 출발하는 국가의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본의 행패를 견제할 수 있다. 우린 아세안 공동 경제 체제에서 반드시 아세안 공통의 노동권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노동존중 사회, 될까?

(코르티나) 한국 정부는 다국적기업이 국내법을 지키도록 근로감독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국내법을 존중하도록 정부가 냉철한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다국적기업이 노사 협상을 회피하는 등 국내 노동법을 무시하는 행태를 방치하지 말라. 정부는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한다.”

(보스시거) 한국 정부는 공공입찰을 하거나 국민연금기금을 통한 공적연기금 투자 시 해당 기업이 과연 노동권을 인정하고 있는지를 확인한 후 투자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노동자를 존중한다는 시그널을 준다. 공적기금의 투자 원칙에 노동 존중이 포함돼야 한다.”

한편, UNI는 전 세계 120여 개국 1000여 노조의 사무직, 금융, 언론, IT,  상업,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우정물류, 스포츠 및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약 2000만 명의 조합원이 가맹돼 있는 최대 사무직 산업별노조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 전국우정산업노조, 전국의료산업노조연맹, 프레제니우스노조,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연맹, 전국 보건의료산업노조, 전국서비스노조연맹, 전국언론산업노조 등 38만 명이 가입돼 있다. 

코르티나 의장은 아르헨티나에서 변호사 출신으로 브에노스아이레스대학 교수, 브에노스시 노동위원, 아르헨티나 노동부 국제국장 등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8년 제5차 UNI 세계총회에서 신임의장으로 선출됐다. 독일 출신의 알케 보스시거 사무부총장은 도이취뱅크에서 재직 중 노조교섭위원으로 활동, 이후 UNI로 적을 옮겨 20여 년간 UNI 상업분과국장과 ICT 분과국장으로 활동하다 사무부총장에 선출됐다.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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