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기생충’ 곽신애 “봉준호, 미국서 인기 최고!”

[쿠키인터뷰] ‘기생충’ 곽신애 “봉준호, 미국서 인기 최고!”

‘기생충’ 제작사 대표 곽신애 인터뷰

기사승인 2020-02-22 08: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어제 좀 달렸어요. 하하.” 21일 오전 11시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 나타난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의 첫 마디는 이랬다. 곽 대표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전날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 팀과 함께 청와대 오찬 모임에 참석한 뒤 오후엔 수십 개 매체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기생충’ 멤버들이 모여 있단 소식을 듣고 일종의 ‘뒤풀이’를 했다. ‘오스카(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레이스’에 함께 하지 않았던, 반가운 얼굴들이 많아 자리가 길어진 모양이었다. 곽 대표는 “오스카 트로피를 쥐어보지 못했던 분들도 어제 한 번씩 트로피를 들어봤다”며 미소지었다.

곽 대표가 제작한 ‘기생충’은 한국 영화사는 물론 오스카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92년 오스카 역사상 처음으로 영어가 아닌 외국어 영화로 작품상을 받아서다. 오스카는 오랜 시간 ‘백인들의 잔치’라고 비판받아왔다. 시상을 결정하는 아카데미 회원들 대부분이 중년의 백인 남성이어서 비(非)영어권 영화에 배타적인 태도였던 게 사실이다. 이번 시상식을 앞두고도 “‘1917’의 수상은 아카데미 역사를 확증할 것이고 ‘기생충’의 수상은 아카데미 역사를 만들 것이다”(베니티 페어), “‘기생충’은 증명할 게 없지만 오스카는 증명할 게 많다”(LA 타임스) 등의 논평이 나왔다.

곽 대표는 “‘우리가 (작품상을) 받는다면 역사가 만들어지는 거구나. 그런데 아카데미 회원들이 그 선택을 할까? 한다면 얼마나 많이 할까?’ 싶었다”고 털어놨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생충’을 향한) 열의가 뜨겁다고 느끼긴 했어요. 대면한 사람마다 ‘너희(‘기생충’)를 응원한다!‘ ‘내 표는 너희 거야!’라고 했으니까요. 다 ‘기생충’을 찍었다고 하는데, 찍은 사람들만 우리에게 오는 건지…. 하하.” 

‘기생충’의 승리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현지 언론과 수상 예측 사이트들은 10개 중 8개꼴로 영화 ‘1917’(감독 샘 멘데스)이 작품상을 가져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곽 대표는 “전례가 없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더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받는 상은 총 4개(각본상·국제외국어영화상·감독상·작품상), 트로피는 총 6개가 쥐어졌다. 각본상은 봉준호 감독·한진원 작가, 작품상은 봉 감독 및 곽 대표가 공식 수상자가 돼서다. 곽 대표에 따르면 오스카 등 미국 영화 시상식은 공식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도 까다로운 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메일을 통해 주요 스태프들의 기여도를 물은 뒤 그 대답을 바탕으로 누구를 후보자로 올릴지 결정한다.

10개월에 걸친 오스카 레이스 동안, ‘기생충’이 가는 곳엔 ‘최초’의 기록이 발자국으로 새겨졌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중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탄 것을 시작으로, 미국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미국 배우조합상, 미국 작가조합상 등에서 수상했다. 곽 대표는 “온갖 사람들이 ‘최초’가 됐다. 최초들의 무리 속에 있어서 별 자각이 없다”며 웃었다. 그가 배우 송강호에게 “선배님, 제가 최초래요”라고 말했더니, 송강호 대답하길 “최초 아닌 사람이 없는 것 같아” 했단다. 봉 감독의 인기는 특히 대단했다. 세련되고 재치 있는 입담 덕분이다. 봉 감독의 주변은 인사를 청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DGA(미국 감독 조합상) 때도 우리 테이블만 요란했어요. (인사를 받느라) 봉 감독님이 물을 따라 마시는 데 40분이나 걸렸다니까요!”

곽 대표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기뻐해주니 덩달아 즐거울 뿐, ‘상을 받아서 너~무 좋아’ 하진 않는다”고 했다. 상을 받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까. 그는 오스카 역시 영화의 우열을 가리는 행사가 아닌, “주목받아 마땅한 영화, 더욱 주목받았으면 좋겠는 영화를 뽑아서 ‘붐 업’ 시키는 과정”이라고 봤다. ‘기생충’도 이런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 1월 3개에 그쳤던 미국 내 ‘기생충’ 상영관은 오스카 수상 이후 2000개로 늘었다. 일각선 ‘기생충’이 순 제작비의 17배를 벌어들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곽 대표는 “매출은 영화로 벌어들인 총 수익이라는 뜻이지 우리가 갖는 순이익은 아니”라면서 “남는(순이익) 건 있지만 ‘엄청난 금액!’, 이런 건 아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운명이었을까. ‘신애’라는 이름의 곽 대표가 ‘씨네’(Cine) 세계에 몸담게 된 건. 곽 대표는 1990년대 씨네필들의 바이블로 통하던 영화잡지 ‘키노’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제작사 청년필름, LJ필름의 기획마케팅실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유년 시절 이야기에 천착했던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출판 대행사와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맺은 정성일 영화평론가(전 키노 편집장)와의 인연이 곽 대표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정 평론가와 곽 대표는 작년 10월 열린 부일영화상에서 각각 유현목영화예술상과 작품상 수상자로 다시 만났다. 무대에서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마구 웃었다. “이런 날이 다 오네요” 하면서.

“어렸을 땐 영화에 대한 로망이 없었어요. 그때의 나를 지금 규정하면 ‘이야기를 좋아했던 사람’ 같아요. 소설뿐만 아니라 하이틴 로맨스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이야기’ 같은 것도요. 그래서 어느 순간엔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청소년기부터 영화를 보고 꿈꾸고 공부했는데, 어느날 (업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있잖아요. 제가 남아 있는 게 미안했어요.” 

곽 대표는 “감정을 움직이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믿는다. “제 기준에서 지루함이 없는 영화들, 단 지루함이 스펙터클이 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리고 머리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들이 좋아요.” 동시에 ‘여성’ 영화인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고민에도 그는 기꺼이 머리를 싸맨다. 지난해 곽 대표는 SNS에 ‘올해가 여성 영화인의 원년 같다’고 적었다. 영화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 ‘벌새’의 김보라 감독, ‘메기’의 이옥섭 감독, ‘아워바디’의 한가람 감독 등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던 때였다. 곽 대표는 “스쳐 지나가는 게 아니라 주목하게 되는 작품들이었다”며 “외부에서 주어진 플러스 알파가 있다면, 여성 영화인들과 작업한다거나 뭔가 좋은 걸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눈을 빛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연합뉴스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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