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들이 법원에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고 있다. 형량을 줄이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혹에 더해 판사의 재량으로 감형할 수 있는 작량감경 제도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2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n번방’ 사건 관련 혐의를 받는 ‘태평양’ 이모(16)군, ‘n번방’ 전 운영자인 일명 ‘와치맨’ 전모씨는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조씨 공범인 한모씨는 지난달 19일부터 31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반성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변호인도 지난달 31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씨가 텔레그램 방을 통해 저지른 범죄를 반성하고 있다"면서 "현재 반성문을 작성하고 있다. 아직 제출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들의 반성문 제출이 피해자들을 향한 사죄와 반성의 의미라기 보다는 감형을 노린 계산된 행동이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원은 반성문, 탄원서, 피해자와의 합의를 비롯해 피고인의 개인 사정 등을 양형 근거로 참작하고 있다.
실제로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 반성과 뉘우침은 감형 요소로 작용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선고된 성범죄 관련 하급심 판결 중 법원 종합법률정보에 등록된 137건의 양형기준을 분석한 결과, 3분의 1 수준인 48건이 '피고인의 반성과 뉘우침'을 감형 요소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조수진 변호사는 "일단 의뢰인한테 무조건 반성문을 쓰라고 한다. 일단 작량감경 제도가 있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작량감경 제도는 작량해서, 혜량해서 감경을 해준다는 의미로 공식적 증거가 없어도 판사가 봐서 혜량을 해서 ‘형을 깎아줘야겠다’ 하면 할 수 있다. 거의 2분의 1까지 깎을 수 있게 돼있다. 이게 엄청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법 제53조(작량감경)에 따르면 재판장은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작량하여 그 형을 감경 할 수 있다. 유기징역 또는 유기금고를 감경할 때는 형기 절반을 깎을 수 있다.
문제는 온전히 판사 개인의 판단으로 형을 절반까지 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판장에 너무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게 아니냐는 점이다. 또 작량 감경이 적용됐을 경우 국민 법 정서와 맞지 않다는 비판도 여러 번 나왔다.
대표적으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일당 5억원’짜리 노역형 집행을 해 ‘황제노역’ 논란이 일었던 사건이 있다. 검찰은 지난 2008년 허 전 회장에 508억원 세금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1000억원을 구형했다. 이에 당시 광주지법 형사2부는 작량감경을 적용, 징역 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또다시 집행유예 4년에 벌금 254억원으로 깎았다. 감경 사유로는 자수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작량감경 제도는 국정농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서도 논란이 됐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잘 운영되는지를 살펴 형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기업 활동을 개인 범죄 감형 사유로 삼는 것은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 4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노동, 시민단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떤 법적 권한과 책임도 없는 외부기구가 이 부회장 범죄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돼 형량을 고려하기 위한 방편이 돼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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