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마음의 모양

[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마음의 모양

기사승인 2020-05-11 08:57:06

내게 가장 행복했던 어버이날은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다. 그날, 딸은 동네 꽃밭에 심어져있던 꽃을 따서 꽃다발을 만들어왔다. 나는 색색의 꽃을 찾느라 무릎까지 시꺼멓게 흙이 묻은 채, 우리를 위한 꽃다발을 안고 들어온 딸에게 고맙다고 뽀뽀를 해주었다. 하지만 여럿이 보는 꽃을 함부로 따면 안 된다고 오래 주의를 주어야 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은 어버이날 기념으로 저녁밥을 사겠다고 하였다. 오후 내내 꽃밭을 헤매느라 배가 고팠던 딸이 대뜸, ‘그럼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고 했다. 어린 딸은 오빠의 재력을 엄청난 것으로 착각했지만 아들은 아마도 한 그릇에 이삼천 원하던 분식집을 생각했을 것이다. 당황할 아들과 실망할 딸 생각에 조마조마해진 내가 얼른 ‘엄만 중국집에서 시켜 먹고 싶다’고 나서서, 결국 내가 밥은 하고 아들이 만 원짜리 탕수육을 시키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모두가 행복했던 저녁이었다. 

그 다음 해 어버이날엔 아이들이 빳빳한 봉투를 내밀었다. 그새 좀 더 자란 딸애의 봉투 속엔 편지와 도화지를 잘라 만든 효도 상품권이 들어있었다. 중학생이 되어 주급 오천 원을 받게 된 아들의 봉투 속엔 카드와 엄마 아빠 각각 팔천 원씩, 만 육천 원이 들어있었다. “텔레비전 보니까요, 엄마 아빠가 제일 받고 싶어 하는 어버이날 선물이 돈하고 상품권이래요.” 동네 꽃을 꺾는 대신, 청소도 해주고 안마도 해주며 나중엔 원하는 건 다 사주고 비행기까지 태워주는 엄청난 상품권을 자체 발행한 딸이 말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자기는 백지수표에 평생 쓸 수 있는 상품권이라고 했다.

딸의 만능상품권과 아들이 준 조금은 어정쩡한 액수의 현금이 귀엽긴 했지만, 아이들도 벌써 간편한 금전 선물에 맛을 들일까 걱정이 되어 나는 부모가 가장 바라는 건 너희가 잘 커주는 것이며 마음이 최고의 선물이라고 다시 이야기해주었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마음이 최고의 선물인데 엄마 아빠 마음대로 쓰실 수 있으니까 이게 바로 마음에 제일 가까운 거잖아요.”

그날,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나눈 듯 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른 마음에 대해 말했다. 선물을 받던 나는 ‘주는 사람의 마음’을 말했는데, 선물을 준 아들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얘기했으니 대화의 방향이 어긋났다. 그럼에도 서로 상대를 생각하여 주고받으려 한 점에선 어쩌면 우리가 나눈 가장 완벽한 소통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생각한 ‘마음에 제일 가까운 선물’을 받은 뒤, 나는 그것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내 마음에 가장 가까운 것을 주려 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게는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 마음에 제일 가까운 거라서 너무도 아까워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싶어 오래오래 기뻤다.

마음은 모양도 크기도 없다고 한다. 자신이 담기 나름, 쓰기 나름이다. 둥글게 담아서 넘치게 쓸 수도 있지만, 선인장처럼 가시를 달 수도 있고, 문을 닫아 아예 새지도 들이지도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엄마이기 전에 딸이고 며느리라 올해 어버이날도 친정과 시댁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바가지를 쓴 게 분명한 걸 알면서도, 구순이 넘은 두 어머니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어버이날을 맞으실까 싶어 턱없이 비싼 꽃을 사 들고 찾았지만 어머니께 드린 내 마음의 모양과 크기를 생각하면 한없이 죄송하다. 

두 분 다 정신이 흐릿해지셔서 어버이날도 모르시니, 어쩌면 나의 빈약한 마음도 잊으셨을지…. 그 수많은 어버이날 중에 내가 부모님께 온전한 마음을 드렸거나, 적어도 마음과 가장 가까운 것을 드렸던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억이 오직 하나라도 부모님 머릿속에 남았다면, 그건 또 얼마나 좋을까. 내가 받은 어버이날보단 내 부모의 어버이날 생각이 사무치는 오월이다. 

이정화(주부/작가)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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