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Mnet이 여성 가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여성 음악인들만 출연하는 Mnet 프로그램은 ‘언프리티랩스타3’ 이후 4년 만이다. 게다가 이번엔 출연자들끼리 갈등하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알아서 팀을 꾸려 공연을 펼치는 형식이다. 혐오 표현 및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방송에 내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최고 수준의 징계를 받았던 ‘쇼미더머니4’의 PD가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다. 여러모로 격세지감이 든다. 14일 처음 방송한 ‘굿 걸: 누가 방송국을 털었나’(이하 굿 걸)의 얘기다.
기대 이상의 재미와 예상 가능한 클리셰. ‘굿 걸’ 첫 방송을 두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다양한 여성 음악인들의 모임은 특별한 예능적 장치 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웃기다. 흐르는 침묵 속에서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전지우와 그 앞에서 고구마칩을 먹는 윤훼이의 괴상한 광경에 킥킥대다가, 출연자들의 이름이 공개될 때마다 “헐”을 남발하며 “다 못 알아봤다”고 고백하는 슬릭에겐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된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출연자들의 모습에선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시청자의 평가 권력을 벗어난 여성 음악인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솔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서다. Mnet 특유의 쓸데없이 비장한 연출에 일격을 날리는 출연자들의 개성도 반갑다.
반면 어떻게든 출연자들 간의 갈등을 만들려는 시도는 진부하다. 치타를 ‘모두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로 묘사하는 건 이제 너무 빤하지 않나. 가장 실망스러운 건 슬릭을 대하는 태도다.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 교차 페미니즘을 얘기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건 물론 고무적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적 담론을 담은 그의 음악을 ‘진지하고 심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치부하는 연출은 공정하지 못하다. 심지어 방송 말미 슬릭이 다른 출연자들과 유닛을 이루지 못한 모습을 강조하는 등 페미니스트를 ‘별난 존재’ ‘이방인’처럼 묘사했는데,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부디 슬릭을 비롯한 ‘굿 걸’ 출연자들이 Mnet의 납작한 캐릭터화를 깨부수고 이해와 화합의 장을 열어주길! Mnet은 못 미덥지만 출연자들을 믿으며 다음 회를 기다려 보련다.
■ 볼까
TV에서 더 많은 여성 음악인들을 보고 싶은 이들, 여성 음악인들의 음악이 진지하게 다뤄지길 원하는 이들, ‘쇼미더머니’ 심사위원 자리를 남성 음악인들이 독식하는 게 꼴보기 싫은 이들, ‘아재 래퍼’라는 말에 고개부터 젓게 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 말까
TV에서 남성 음악인들만 보고 싶은 이들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일단 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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