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명의 성폭력 ‘알파벳 교수들’…“대학 구조가 가해자 재생산”

n명의 성폭력 ‘알파벳 교수들’…“대학 구조가 가해자 재생산”

기사승인 2020-06-06 07:08:00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서울대학교 음대 A 교수가 대학원 학생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과 갑질을 저질러 직위해제된 사실이 지난 4일 알려졌다. A교수는 지난해 7월 유럽학회 출장에 동행한 제자의 호텔 방에 새벽 시간 강제로 들어갔다. 이후 손을 강제로 잡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제자가 이후 A교수를 멀리하자 ‘싫으면 나가라’면서 갑질도 일삼았다.

#지난달 25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에 따르면 B 명예교수는 1학기 중간고사 시험 과제로 학생에게 ‘사느냐고?-남자는 물, 여자는 꽃’, ‘더 벗어요?-남자는 깡, 여자는 끼’라는 제목의 개인 블로그 게시글을 읽도록 지시했다. 게시글에는 남성을 물뿌리개, 여성을 꽃에 비유하며 “섹시하면서도 지적인 여자가 매력있고 정숙한 상냥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애교를 남자들은 좋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총학생회는 B교수를 향해 명예교수직을 내려놓을 것을 요구했다. 한국외대는 B 교수 강의를 중단하고 대체 강사를 투입했다. 

대학교 내에서 교수가 위계적 지위를 이용해 학생을 성폭력, 인권침해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단체는 21대 국회를 향해 교수의 성폭력을 용인하고 재생산하는 대학 구조를 바꾸기 위한 입법을 요구했다.

14개 학생회, 18개 학생단체가 결성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등이 연대한 ‘대학내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2020 총선-국회 대학가 공동대응’(이하 공동대응)은 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21대 국회 개원일, 국회 앞에 모인 학생들은 “인천대 A교수, 서울대 H교수와 A교수, 고려대 K교수 등 대학에서는 학생을 상대로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저지른 수많은 ‘알파벳 교수’가 있었다”면서 “학생들의 투쟁과 시민사회 연대에도 불구하고 대학 본부는 피해 학생보다 가해 교수를 감쌌고 대학은 여전히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남아있다”고 비판했다.

공동대응 측은 “교수들로 이뤄진 교원징계위원회, 가해교수를 비호하는 대학본부, 인권침해 사건을 해결하고 피해호소인을 지원하기는커녕 2차 가해를 저지른 인권센터 모두가 가해자”라고 꼬집었다.

대학내 성폭력 사건은 증가하는 추세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고등교육기관(대학·전문대학)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은 115건이다. 지난 2015년 73건 대비 42건(57.5%)이 증가한 수치다.김예지(26·)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인권위원장은 “학생들은 가해 교수에 대한 제대로 된 징계를 요구한다. 그러나 학교는 견책, 감봉 등 턱없이 가벼운 처벌을 내리고 교수를 비호하기에 급급하다”면서 “결국 가해 교수는 학교에 남고 떠나는 것은 피해 학생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학생들은 대학의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고 따라야 하는 이들이 아닌 대학 본부와 동등하게 대학을 구성하는 구성원이자 주체다. 학생이 징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교내 교원징계위원회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대응측이 지난 11일부터 22일까지 학부생 및 대학원생 24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수에 의한 권력형 성희롱, 성폭력 사건 발생시 교원징계위원회가 문제해결 과정에서 피해자를 우선할 것이다’는 항목에 과반이 넘는 62%의 학생이 ‘전혀/대체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교내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윤정(23·여) 계원예술대학교 제27대 총학생회 부총학생회장은 “최근 한 교수는 수업 중 남학생들에게 ‘이쁜 여자 보면 친구한테 자랑하고 싶죠. 지나가다 이쁜 여자 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사진 찍어서 보여줘야지’라며 불법 촬영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면서 “이런 자격 미달의 교수들을 걸러내지 못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 피해를 감당하는 것은 오로지 학생의 몫”이라고 규탄했다. 

총학생회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대학내 인권센터 설치를 요구했으나 의무가 아닌 탓에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17년 7월에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8년 3월에는 같은당 김부겸 의원이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그러나 법안은 20대 국회와 함께 폐기된 실정이다.

공동대응은 21대 국회와 교육부를 향해 △성폭력·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심의, 징계위원회에 대학(원)생의 참여 권한 명시 △피해자에게 징계 과정, 결과에 관한 정보 고지 △전문적이고 공정한 인권센터 설치 의무화 △교육부의 대학 인권 실태 조사 정기화를 요구했다.

송초롱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은 “성폭력 가해 교수의 교수직과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학생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침해받는 상황을 더이상 방관해서는 안된다”라며 “미투 운동 이후 가해교수들의 명예훼손이 이어지며 교내 인권센터에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인권센터 사건 조사 활동 심의 및 징계 결정의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면책 조항을 입법해 인권센터가 선도적으로 사건 처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대학 공동체가 윤리적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국회와 교육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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