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자녀 살해 뒤 극단적 선택하는 부모…멈출 방법 없나

계속되는 자녀 살해 뒤 극단적 선택하는 부모…멈출 방법 없나

기사승인 2020-06-10 06:11:00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자녀를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 한 아파트에서 3~40대 부부가 지난 7일 오전 5시 투신해 숨졌다. 아파트 내부에서는 강한 폭발과 함께 불이 발생했다. 부부의 10대 아들은 아파트 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몸에는 화재와 관련 없는 흉기에 찔린 상처 5~6군데가 발견됐다. 경찰은 아들이 아버지와 몸싸움을 벌이다 변을 당했을 확률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대구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40대 가장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중학생 아들과 70대 어머니, 40대 아내는 사망했다. 이후 경찰 조사 결과 가장은 부동산 투자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가족들과 함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그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자녀 살해 후 부모의 극단적 선택’ 사건은 25건으로 집계됐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8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른 학대 사망 아동 숫자 28명과 비슷한 규모다.

이 같은 비극의 원인은 가정불화와 생활고가 대부분이다. 지난 2014년 서울경찰청 소속 정성국 박사 등이 경찰 수사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을 보면 살해 동기 가운데 가정불화가 102건(44.6%)을 차지했다. 경제문제 62건(27%), 정신질환 55건(23.9%) 순이었다.

자녀 살해 후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은 ‘동반 자살’이 아닌 살인이고 최악의 아동학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 배경에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 풍토가 자리잡고 있다.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가장이 생활고와 가정불화를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자녀를 살해하는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정부는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 집계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매년 학대로 사망하는 아동 숫자와 버금가게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에 의해 살해되는 아동들이 발생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단순 일가족 사망 사건으로 처리된 것까지 합하면 수치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가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면서 “통계 자료 집계는 제도 보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절차다. 이마저도 없다는 것은 정부가 아동 보호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법 조항에도 자식의 부모 살해(존속 살인)보다 부모의 자식 살해(비속 살인)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인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 살인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가중처벌된다. 그러나 비속 살해는 따로 규정이 없어 형법의 보통 살인죄 조항(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따라 처벌된다.

지난 2018년 심재철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가 비속 살해도 존속 살해와 동일하게 일반 살인죄보다 가중처벌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 폐기됐다.

전문가는 아동을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부모 사건에 대해 ‘부모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특유의 온정주의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아동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존권을 결정할 수 없고 자녀는 부모에게 속한 존재가 아닌 독립적 인격체라는 아동권리교육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