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사이드] 제아, 만인의 멋진 언니

[딥사이드] 제아, 만인의 멋진 언니

제아, 만인의 멋진 언니

기사승인 2020-06-17 08: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문)별아!” “언니~” 수화기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두 여인의 목소리가 반갑다 못해 애틋하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 실시간 스트리밍 채널 ‘네이버 나우’의 ‘6시 5분 전’ 방송에 출연한 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 멤버 제아가 후배 그룹 마마무의 멤버 문별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둘은 제아가 이날 발매한 노래 ‘그리디’(Greedyy)를 계기로 자매애를 쌓았다. 이전까진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단골 식당을 ‘아지트’ 삼아 만나는 관계로 발전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제아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문별은 처음 제아의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선배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다니!’ 그의 대답은 “무조건 하겠습니다”였다. 문별은 이 곡 랩 가사를 쓰면서 자신 또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남들 시선에 위축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행복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용기였다. 문별은 이런 다짐을 “무슨 옷을 입든 틀린 건 없어 / 내가 걸치는 색이 컬처(culture)”라는 랩 가사에 담았다.

문별의 마음을 움직인 가사는 가수 아이유의 솜씨다. 아이유는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선글라스 쓰고 태닝하는 기분으로” ‘그리디’의 노랫말을 적어 나갔다. 사람들의 과도한 오지랖에 코웃음을 짓는 태도가 여유로우면서도 단호하다.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노래 ‘삐삐’에서 “이 선 넘으면 침범”이라고 선을 긋던 아이유의 감각은 여전히 날카롭다. 미스틱스토리에 따르면 아이유는 ‘파워 당당’이라는 열쇳말만으로도 ‘그리디’의 가사를 완성했다. 욕심이 넘친다는 의미로 ‘y’가 두 번 들어가는 제목도 아이유의 아이디어다. 

제아는 ‘그리디’에서 “늘 착할 수는 없어 / 욕심나는 건 가져야지 않니”라고 묻는다. 그가 설정한 청자는 ‘여동생’들이다. 소년들이 ‘야망을 품어라’(Boys, Be ambitious)라고 응원받을 때, 소녀들은 겸양과 헌신을 체화하며 끝없는 자기 검열의 굴레에 갇혀야 했다. 제아는 여동생들에게 양보 대신 욕심을, 칭찬 대신 미움을 택하라고 “가볍게 가르쳐” 준다. 그는 “주위 동생들을 보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주변으로부터 미움받을까 봐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다 보면 언젠가 ‘현타’가 온다. 지금 미움받을지언정 욕심나는 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습생 시절부터 서울 홍대 인근에서 1000번에 가까운 ‘실전 테스트’를 거친 제아는 2006년 브라운아이드걸스 멤버로 데뷔해 ‘실력파 보컬’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아브다카다브라’, ‘어쩌다’, ‘러브’ 등을 히트시켰지만, 2011년 ‘식스센스’ 활동을 마친 뒤 당시 매니저에게 “브라운아이드걸스를 해체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멤버들 모두 각자의 길을 가면서 때에 맞춰 결혼도 하는 게 남들 보기에 좋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당시 제아의 나이는 고작 31세. ‘30대 걸그룹’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상상력의 빈약이 빚은 촌극이었다. 하지만 브라운아이드걸스는 ‘걸그룹은 수명이 짧다’는 편견을 깨고 15년째 활동을 이어오며 국내 최장수 걸그룹으로 우뚝 섰다.

제아는 지난해 발표한 ‘디어 루드’(Dear. Rude)에서 “꺾으려 해도 네 맘대론 no”라며 “난 매일 채우고 더 나아가지”라고 노래했다. 뜨겁게 분노를 쏟아내며 찾은 건, 이 곡이 실린 음반 제목이기도 한 ‘새로운 나’(Newself)였다. 그런 제아에게 후배 여성 뮤지션들은 ‘언니가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응원을 자주 보낸다. 그룹 투애니원 출신 산다라박은 ‘그리디’의 안무를 따라 추는 ‘그리디 챌린지’에 참여하며 제아의 컴백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렇듯 남성 중심적인 시장에서 자신의 언어로 노래하는 여성 뮤지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동기 부여가 된다. “만인의 멋진 언니”(아이유) 제아의 다음 행보에 더욱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wild37@kukinews.com / 사진=미스틱스토리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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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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