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정규직 전환 논란을 보면서 당사자들에 대한 비난이 가장 걱정됐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정규직 전환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무수한 혐오와 차별과 맞닥뜨렸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직원에게 ‘그렇게까지 정규직 되고 싶냐’는 말을 면전에서 들었습니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난 수년간 같은 회사에서 같은 강도의 노동을 하며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을 겪어야 했던 피해자입니다. 정규직 전환을 바란 것이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인국공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채용 절차의 공정성 논란’으로 번졌다. 1900여명의 보안검색 요원들을 시험도 없이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중단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3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정부와 여당은 ‘5000만원 연봉’ ‘로또 채용’ 등 가짜뉴스로 갈등이 촉발됐다는 입장이다. 미래통합당은 ‘인국공 공정채용 TF’를 발족한 뒤 문재인 대통령에게 인국공 정규직 전환을 즉각 유보할 것을 촉구했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지난 7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경영진을 면담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진보당, 청년전태일, 한국청년연대 공동주최로 9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인국공 논란에 대한 청년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말로만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하고 전환 방식도, 기한도 회사에 떠넘겨 노동자간 갈등과 상처만 남겼다며 무책임함을 비판했다. 비정규직 당사자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 발언을 멈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극심한 내홍을 겪은 것은 인국공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을 신규채용 방식으로 일괄 전환했다.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 이후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하겠다면서 서울시가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임선재 서울교통공사 PSD지회장은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때 경험한 혐오와 차별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동료도 있었다”면서 “근본적 갈등 책임은 무책임한 정부에 있다. 공기업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주된 문제는 ‘총액임금제’(정해진 예산 안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나누는 제도)다. 당시 기존 직원들은 임금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았다. 취업준비생들은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도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그저 당사자인 서울교통공사가 알아서 하라고 한 뒤 정규직 전환을 했다고 생색내는데 급급했다”고 짚었다.
임 지회장은 “생명 안전 업무는 정규직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원대한 취지는 사라졌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내 임금을, 내 복지수준을 갉아먹을 상대로 바라보는 상황만이 남았다”며 “제도개선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규직 전환은 을끼리 싸우라고 부추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가 얘기를 했으면 내용과 결과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정규직화가 필요하다는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도 나왔다. 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지난해 8월 연료, 환경설비 운전업무는 발전 5사가 직접고용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발전 5사 연료환경설비 하청 노동자들은 정부의 뚜렷한 대책 발표가 나오지 않아 3개월씩 무기한 계약 연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 김씨와 같은 영흥석탄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세일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장은 “특조위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원하청의 구조적인 문제로 밝혀졌다. 김용균 동지가 숨진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석탄취급설비 현장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앞도 보이지 않는 발전소에서 방진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비산먼지가 가득한 환경에서 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루 12시간씩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지부장은 “결국에는 정규직이 아니면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안전에 관련된 사항은 묵인되거나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인국공 정규직화는 우리 사회 비정규직을 서서히 없애기 위한 초석이다. 죽음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서는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특조위 조사 결과가 반영될 수 있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정규직 전환을 하라고 했더니 자회사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꼼수가 만연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명숙 진보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약속만 했지 회사에서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국민들에게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잘 달성해 나가고 말하고 있다”면서 “비정규직 제로 약속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 1일에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적극 지지하는 청년들의 외침’ 성명서가 나왔다. 대학생 양동민씨를 주축으로 연서명을 받고 있다. 8일 오전 11시 기준 연서명에 이름을 올린 청년은 280명에 이른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공정한 경쟁을 거친 사람만이 정규직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경쟁만능주의가 열병처럼 떠돌고 있다. 우리 모두는 ‘공정한 경쟁’의 승자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9%만이 공공부문이나 민간 대기업 정규직이 되고 80% 이상의 평범한 우리들은 모조리 ‘탈락자’로 전락하고 만다”고 했다.
이어 “한국 사회는 탈락한 우리들에게 지옥을 선사하고, 그것이 탈락자에게 걸맞는 정당한 대우라고 말하지만 이 세상은 탈락자들의 노동이 있기에 존재한다”면서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보안 노동자들, 청소노동자들,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인천공항은 하루도 운영될 수 없다. 모든 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으면 세상은 하루도 굴러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규직화 흐름은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제대로, 광범위하게 추진해 모든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했다.
인국공 사태는 법적 싸움이라는 국면으로 전환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는 이날 공사가 보안 검색요원 직접고용을 일방적으로 졸속 추진했다면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노조 측은 “공정한 업무 처리에 앞장서야 할 공기업의 역할을 저버리고 불공정으로 점철된 직고용을 강행한 것”이라며 “직고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공정성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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