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밴드는 록 음악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모두가 함께 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스틱스토리 소속 밴드 루시는 지난 13일 발매한 첫 번째 미니음반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JTBC ‘슈퍼밴드’ 출신인 루시는 프로그램 출연 당시 공간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선보이며 ‘앰비언스 팝’이라는 장르로 분류됐다.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밴드 소란의 보컬 고영배는 “자신의 색깔이 가득 찬 음악을 하는 팀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면서 “루시가 대박이 나야 이렇게 자신의 음악을 하는 팀들이 더 생길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K팝 부흥에 힘입어 밴드 음악이 주류 시장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비주류 음악’ ‘장르적 색채가 짙어 진입장벽이 높은 음악’ 등의 오해를 딛고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으로 다가가고 있다. 여기에 대형 기획사의 제작 노하우가 집약된 콘텐츠 덕분에 팬덤의 규모나 충성도 역시 여느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JYP엔터테인먼트가 만든 밴드 데이식스다. 2015년 데뷔한 이들은 초창기 방송 대신 공연에 집중하며 내실을 다지다가, 2017년 시작한 ‘에브리 데이식스’ 프로젝트를 계기로 인기 밴드로 도약했다. 매달 신곡을 내고 공연을 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인 점이 주효했다.
이들 음악의 특징은 팝에 록을 섞어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예뻤어’, ‘놓아 놓아 놓아’ 등의 노래가 입소문을 통해 꾸준히 회자됐다. 지난해부터 선보인 ‘더 북 오브 어스’(The Book of Us) 시리즈 음반은 데이식스가 개별 곡의 음악성뿐 아니라 음반 단위의 기획력 또한 뛰어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데이식스는 이달 말 새로운 도전을 한다. 멤버 영케이(보컬·베이스), 원필(보컬·건반), 도운(드럼)이 뭉친 유닛 그룹 ‘데이식스 이븐 오브 데이’로 첫 음반을 내는 것이다. 제이와 성진이 연주하던 기타의 빈자리는 영케이가 채우게 된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영케이가 베이스 연주만으로 기타 사운드를 커버해 악기 연주에서도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근 첫 미니음반을 낸 미스틱스토리 소속 루시는 기타의 자리를 바이올린이 채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멤버 최상엽은 “해외 재즈 밴드 중엔 바이올린이 있는 팀이 간혹 있지만, 국내에선 우리 팀이 유일하다”고 했다. 덕분에 루시의 음악은 화성감이 풍부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고영배는 루시의 첫 번째 미니음반 타이틀곡 ‘조깅’을 듣고 밴드 페퍼톤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슈퍼밴드’ 출연 당시엔 영국밴드 콜드플레이의 ‘어드벤처 오브 어 라이프타임’(Adventure of A Lifetime)을 연주해 원곡자에게 칭찬을 들은 일도 있다.
이들은 공간이 가진 특징적인 사운드를 구현하는데 관심이 많다. ‘슈퍼밴드’에서도 노래에 자명종 알람 소리를 넣거나(‘선잠’), 동물의 울음소리로 정글을 표현(‘크라이 버드’)하는 등 색다른 시도를 해 주목받았다. 힙합부터 아이돌까지 여러 장르의 음악을 경험해온 조원상이나 보컬·베이스·드럼 등 여러 포지션을 섭렵한 신광일 등 멤버들의 음악적 배경이 다양하다는 점도 루시의 강점이다. 루시는 “루시만의 장르를 개척하고 싶다”며 “밴드 음악도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걸 보여주면서 (동료 밴드들과) 함께 밴드 시장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했다.
작곡가 김도훈이 이끄는 RBW가 제작한 원위는 ‘퍼포먼스형 밴드’로 차별화한 팀이다. 지난 5월 발표한 첫 정규음반 타이틀곡 ‘나의 계절 봄은 끝났다’ 무대에선 라이브 연주는 물론, 댄서들과 함께 헤드벵잉과 슬라이딩, 발차기 등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무대의 ‘보는 재미’를 살려 K팝 팬들을 흡수하겠다는 야심이 읽힌다. 두 명의 보컬뿐 아니라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멤버 키아의 랩을 더해 ‘K팝스러운’ 음악을 들려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공식 활동이 끝난 뒤에는 ‘나의 계절 봄은 끝났다’의 록 버전을 공개하며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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