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열일곱 소년은 홀로 집을 나섰다. 더는 가정폭력을 버틸 수 없었다. 살기 위해 무작정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걷다 지쳐 발길이 멈춘 곳은 인적이 드문 아파트 단지 구석. 낙엽 더미가 담긴 마대 자루 위에 누웠다. 이대로 동이 틀 때까지 버텨야 했다. 여름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노숙 생활이 6년간 이어질 줄, 그땐 몰랐다.
집을 벗어나면 야생이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급했다. 의식주 중 가장 먼저 포기한 건 주거였다. 지난 10월21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스물아홉이 된 대학생 한대윤(29·남)씨는 ”어떻게든 잘 공간을 찾아가면서 살았다. 학교 건물에서만 6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기나긴 ‘홈리스’ 생활은 한씨의 선택이 아니다. 복지 지원을 받기 위해 구청을 찾아갔지만, 번번이 세대분리의 장벽에 막혀 실패했다. 미혼·미취업 상태의 만 30세 미만의 청년은 부모와 따로 살아도 서류상 ‘하나의 가구’로 보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이하 세대분리법) 때문이다. 부모와 소득이 합산돼 각종 복지 대상자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30세 미만 청년은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점을 입증하면 세대분리 신청이 가능하지만, 한씨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전입신고 시 부모에게 연락이 갈 수 있다”는 구청 직원의 말 때문이었다. 세대분리 신청을 위해선 전입신고가 필수적이다. 세대주인 부모의 정보를 기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에게 자신의 연락처와 주소지가 공개될 수 있다는 게 직원의 우려였다. “부모가 찾아올까봐 겁나 세대분리 신청을 못 했어요. 최소한의 수급이라도 받았다면, 집을 떠난 후 노숙까지 하진 않았겠죠.” 한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현행 세대분리법이 부모의 폭력이나 학대로 집을 떠나 도움이 필요한 일부 20대 청년들을 더 취약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저소득 청년들을 위해 도입한 LH임대주택, 청년전세대출 등 주거 정책은 세대분리를 하지 못한 20대 탈가정 청년들에게 먼 얘기다.
최지혜(25·여)씨도 한씨처럼 부모에게 연락이 갈까 두려워 세대분리 신청을 포기했다. 최씨 말에 따르면, 탈가정 청년은 두 부류로 나뉜다. 주거 지원을 받지 못해 친구 집을 전전하는 ‘홈리스’가 된 청년과 집을 나오지 못하고 가정폭력을 참는 청년이다. 최씨는 전자를 택했다. “20대 탈가정 친구들은 서로를 ‘분리불가 홈리스’라고 불러요.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떠나고 싶은데, 세대분리가 안 돼서 주거 지원을 못 받으니 자조적으로 농담하는 거예요.”
한씨와 최씨처럼 탈가정 청년 대다수는 준비 없이 집을 떠난다. 친구 집을 전전하는 건 운이 좋은 경우다. 대부분은 24시 무인카페나 코인노래방, 공중전화박스, 공중화장실 등에서 밤을 보낸다. 탈가정 청년들의 모임 ‘궤도이탈’을 운영하는 282북스 강미선 대표는 “노숙인 쉼터가 마련돼 있지만, 청년들 대부분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며 “만 30세 연령 기준에 막혀 복지 혜택을 못 받은 청년들이 노숙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이유”라고 말했다.
청년 노숙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다다다협동조합의 조만성 대표는 “만 30세 기준을 넘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는 경우도 드물다”라며 “결국 갈 곳 없는 청년들은 노숙하거나 취약한 주거 환경에 머무르게 된다”고 했다. 이어 “세대분리를 못하면 받을 수 있는 복지 정책은 ‘긴급복지’뿐이지만, 2~3달 한시적 지원이라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갖추기엔 역부족”이라며 “긴급복지 지원이 끊긴 청년들이 다시 노숙 생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삶에서 주거 환경이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주거가 불안정해지면 몸과 마음, 인간관계, 일자리 등 삶의 전반이 연쇄적으로 흔들린다. 많은 청년 홈리스들이 세대분리 소득 요건(올해 기준 월 89만1378원)을 채우기 위해 구직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다수는 좌절을 경험한다. 주거지에서 씻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물론, 일용직을 구하기도 어렵다. 정찬송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온 활동가는 “홈리스 청년이 복지 지원을 받으러 가면, ‘사지가 멀쩡한데 왜 일을 안 하냐’고 묻는 분도 많다”며 “이 물음에 청년 홈리스들은 ‘잘 씻고 깔끔한 사람과 노숙하는 자신이 동시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누굴 뽑겠냐’고 답한다”라고 전했다.
어렵게 일을 구해도 고강도, 저임금, 모욕적인 대우가 만연한 노동 환경 탓에 일을 지속하기 힘들다. 가정 학대에 긴 기간 노출된 청년들은 심리·정서적으로 취약해진 상태라 당장 취업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정 활동가는 “당장 오늘 어디에서 자야 할지 고민인 20대 청년들에게 ‘일을 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세대분리 기준이 적용되는 건 굉장히 이상한 구조”라며 “위기 상황에 대한 적절한 개입이 있어야 노숙 생활을 끝내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환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나이와 소득으로 세대분리를 막는 현 제도가 청소년, 청년들에게 다층적인 ‘진짜 빈곤’과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조만성 대표는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복지 지원을 막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이 제도로 인해 위기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복지 지원을 받지 못하고 범죄에 노출되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부정수급을 방지하는 효과보다 이들이 성인으로서 자립하지 못해 입는 사회적 피해가 더 크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노숙 위기에 처한 청년이 있다면, 안전한 주거 공간에서 건강한 자립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다다다협동조합’에 연락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난 20대의 자립은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선 더 힘들다. 부모의 가정폭력, 일방적 지원 중단, 가출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떠난 청년들에게 국가는 법적 자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을 독립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은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냈다. 쿠키뉴스 취재팀은 8월21일부터 10월31일까지 2개월간 30세 미만의 ‘독립 제약 청년’들을 직접 만났다. 빈곤 상태여도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이다. 큰 빚을 지거나, 노숙을 택한 청년도 있다. 세대분리법으로 복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 20대 청년의 삶을 조명하는 최초의 시도다. 11월4일부터 9편에 걸쳐 보도한다. *‘독립 제약 청년’이라는 언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