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제언] '공공의료' 개념부터 재설정을

[긴급 제언] '공공의료' 개념부터 재설정을

민간병원과 경쟁하는 공공병원에 공적재원 투입 곤란

기사승인 2020-09-14 03:03:01

글·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

'공공의료'는 말하는 사람마다 지칭하는 바가 달라서 대화가 헛도는 경우가 많다. 첫째는 '공공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를 의미하는 경우다(제공 주체의 성격). 둘째는 취약지역, 취약분야.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등을 의미하는 경우다(의료의 기능·역할). 보통 '정부 예산'을 주된 재원으로 한다. 셋째, 아주 넓게 '건강보험 등 공공재원'으로 제공되는 의료를 총칭하는 때도 있다.

논의가 혼선을 빚는 데는 현행 공공보건의료법도 한몫한다. '공공보건의료'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된다. 아주 광범위하다. 이는 앞의 셋째 정의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공공보건의료'사업은 '취약지역, 취약분야. 취약계층에 관한 의료사업, 예방사업, 재난의료사업 등'으로 제한한다. 이는 둘째 정의에 가깝다. 더구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설립ㆍ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이라고 한다. 이는 첫째 정의에 해당한다. 같은 법도 이러니 '공공의료'를 둘러싼 얘기는 동상이몽이 되기 십상이다.

공공의료의 취약성을 얘기할 때, '공공병원이 6%에 불과'하다는 점이 자주 인용된다. 공공의료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뒤잇는다. '공공병원'이 제공하는 의료가 '공공의료'라고 할 때의 얘기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의 개설주체를 다섯 가지로 한정한다. ①의사 등 개인, ②국가나 지방자치단체, ③의료법인, ④여타 비영리법인, ⑤공공기관이다. 이 중에서 ②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⑤공공기관이 개설한 것이 공공병원이다. 나머지는 민간병원이다. 전체 병원의 94%가 이에 해당한다. 

'공공의료'를 강조하다 보면 '민간병원' 중심의 공급체계가 잘못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처럼 공보험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의료제도에서는 민간병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공공병원이 주축인 여러 국가가 의료제공(provision) 기능과 구매(purchase) 기능을 분리하는데 몰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시에, 적정 수의 공공병원도 있어야 한다. 공공병원이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취약지역, 취약분야.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의료'가 바로 그것이다. 민간병원이 꺼리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때 '공공병원'의 존재의의가 커진다. (다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삼는 의사 집단에 온 사회가 속수무책인 상황을 보면서, '공공의료'에 국한하지 않는 '공공병원'의 필요성도 새삼 느껴진다.)

일반의료에서 민간병원과 경쟁하는 공공병원을 대폭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나라는 병상 공급이 과잉이다. 민간병원을 인수, 대체하는 공공병원 건립이라면 모를까 신규 설립은 과잉상황을 증폭시킨다. 공공병상 30%라는 참여정부 공약은 오히려 공공병원 비중 감소로 귀결되었다. 공공병원 확대는 무한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사실, 공공병원인 국립의대병원이 사립의대병원보다 '공공의료'를 월등히 더 제공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건강보험은 같은 의료행위에 대해서 공공, 민간 구분 없이 같은 가격을 지불한다. 공공병원의 '일반의료'에 대해 정부의 재정을 추가 지원한다면 모순이 생긴다. 영국 공공병원처럼 아예 국가세금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민간병원에만 맡겨두었을 때 적절히 제공되지 못하는 서비스나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에 공공병원은 더 집중해야 한다. 이때 생기는 소위 ‘착한 적자’에 대해서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민간병원과 경쟁하느라, 돈 되는 의사를 수억 원의 연봉으로 모셔오는 공공병원에 공적 재원이 투입되어서는 곤란하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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