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매니아’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

‘스포츠 매니아’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

기사승인 2020-10-27 08:00:03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한국 재계의 큰 별이 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6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2014년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이후 긴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경영 승계 이후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며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스포츠 매니아로 유명했던 이 회장은 생전 한국 체육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삼성 라이온즈 창단 당시의 이건희 회장(좌). 사진=연합뉴스



병상에서도 라이온즈 생각만… 각별했던 야구 사랑


이 회장은 여러 프로 스포츠 종목의 창단과 운영을 주도해 한국 체육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삼성 라이온즈(야구), 수원 삼성 블루윙즈(축구), 서울 삼성 썬더스(남자 농구),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여자 농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남자 배구), 배드민턴(삼성전기), 삼성전자(육상), 삼성에스원(태권도), 삼성생명(탁구) 등 현재까지 운영 중인 스포츠단만 9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이 회장의 야구 사랑은 각별했다. 

이 회장은 1982년 프로 출범 당시 자신의 고향인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로 취임해 2001년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창단 첫 해부터 구단 운영비로 13억 원을 투자했고 1985시즌을 앞두고는 25억 원의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야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도 애썼다. 프로 원년부터 대구 경북 지역 아마야구팀에 거액을 지원했고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해 지역 야구 유망주를 발굴했다. 

2군 운영 활성화, 2군 연습장 마련에도 힘쓰며 미래를 다른 팀들보다 한 발 더 앞서갔다. 삼성 퓨처스 팀이 사용 중인 경산 라이온즈 볼파크는 이 회장 주도로 1987년에 세운 시설이다. 

이 회장의 투자 덕분에 삼성 라이온즈는 우승 8회(2위), 한국 시리즈 최다 진출(18회)을 기록한 명문 구단으로 거듭났다. 

그의 야구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김인 당시 구단 사장이 전한 얘기에 따르면 2014년 대구 넥센전에서 이승엽이 3점 홈런을 터뜨리며 11연승을 확정한 순간, 병상에 누워 있던 이 회장이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 회장은 생전 말없이 고생하는 ‘포수 정신’을 주요 가치관으로 강조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2011년 IOC 총회에서 인사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비인기 종목 육성부터 평창 올림픽 유치까지, 탁월한 스포츠 행정가


이 회장은 프로 스포츠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과 인연을 맺은 바 있는 이 회장은 1982∼1997년 대한레슬링협회 21∼24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회장 재임 시기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 7개, 아시안게임 29개, 세계선수권 4개 등 40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스포츠 행정가로서의 능력도 탁월했다.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1987년 이전부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을 역임한 이 회장은 1993년부터 3년간 KOC 부위원장을 거쳐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IOC 문화위원회(1997년), 재정위원회(1998∼1999년) 위원으로 활동한 이 회장은 동료 IOC 위원들과 쌓은 친분을 활용해 세 번의 도전 끝에 강원도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공을 세웠다. 2009년부터 유치까지 1년 반 동안 그는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구를 5바퀴 돌고도 남은 거리다.

▲2017년 롤드컵에서 우승한 삼성 갤럭시(현 젠지e스포츠). 사진=라이엇 게임즈



롤드컵 우승 빛나는 삼성 갤럭시… 미래 스포츠 내다본 혜안


이 회장은 스포츠의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도 갖고 있었다.

한국에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던 2000년대 초반, PC방 프랜차이즈가 곳곳에서 발족하자 삼성전자도 2000년 6월 9일 PC방 브랜드 ‘삼성전자 칸’을 론칭했는데, 이는 당시 극소수에 불과했던 프로게임단이었다. 2003년 본격적으로 스타리그에 뛰어든 삼성전자 칸은 2007년과 2008년 스타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삼성 브랜드를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2012년 이후 글로벌 e스포츠 판도가 ‘리그 오브 레전드(LoL)’로 넘어가자, 2013년 9월 당시 삼성전자 프로게임단은 국내 LoL 구단인 MVP 오존과 블루를 인수해 삼성 갤럭시 프로 게임팀을 창단한다. 2014년 국제 대회인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7년에도 최강의 팀 SK 텔레콤 T1을 꺾고 2회 우승을 차지했다. 2020년 8회 대회가 진행되기까지 롤드컵에서 2회 이상 우승한 팀은 삼성 갤럭시와 SK 텔레콤 T1(3회)이 유이하다. 

이후 삼성은 e스포츠단을 매각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LoL e스포츠가 글로벌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시금 e스포츠계에 눈을 돌렸다. 최근 T1(전 SKT T1)과 파트너십을 맺은 삼성전자는 게이밍 모니터인 오딧세이 G9·G7을 독점 제공하는가 하면 구단 훈련 공간 이름을 ‘삼성 플레이어 라운지’로 명명하는 등 유의미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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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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