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현실에서 출산은 끝이 아닌 시작이지만, 드라마에서 출산은 대부분 ‘해피엔딩’의 요소로 등장한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낙관적이고 관습적인 마지막 문장과 비슷하다. 지금껏 임신과 출산, 육아에 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출산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기보다 그를 둘러싼 시선으로 모성애를 신격화하기에 바빴다.
지난 24일 막을 내린 tvN 월화극 ‘산후조리원’은 출산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는 드라마다. 주인공 오현진(엄지원)은 회사에서는 최연소 임원이지만, 병원에서는 최고령 산모다. 그는 굴욕기와 짐승기, 대환장 파티기 등을 거쳐 출산으로 저승의 문턱까지 다녀온 후 ‘천국’이라고 불리는 산후조리원에 입성한다. 하지만 출산이 그랬듯이 산후조리원의 생활도 예상과는 다르다.
‘산후조리원’은 미디어에서 막연하거나 아름답게만 그리는 출산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조명한다. ‘엄마라면 당연히 이래야 한다’는 도식적인 훈계는 없다. 대신 출산 후 갓 엄마가 된 이들이 겪는 개인적 혼란과 연대, 성장이 있다.
오현진은 출산 직후 하루아침에 많은 것이 바뀐 상황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이를 낳았지만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도 쉽게 마실 수 없고, 회복은 더디다. 게다가 모유수유라는 쉽지 않은 숙제까지 떠앉으며 현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분유가 아닌 모유수유를 모성애의 척도처럼 여기는 현실 때문이다.
드라마는 현진의 감정적 고충을 다루는 동시에 수유 선택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가 당연시 여겨졌던 것들이 정말로 당연한 것인지를 묻는다. 다둥이 엄마인 조은정(박하선)은 “앞으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모유를 먹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루다(최리)는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모유를 먹이는 것이 아이에게 행복한 것이냐”라고 되묻는다. 아이를 위한 엄마의 희생이 정말 당연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각자 다른 자리에서 엄마가 된 이들의 다른 상황과 고민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도 이 드라마의 큰 장점이다. ‘산후조리원’에는 오현진뿐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조은정,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이루다 등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다가도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함께 성장한다.
이 모든 것은 감각적이고 재치있는 연출 위에서 이뤄진다. 현실적인 내용이 경험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비경험자들의 시선을 끈다. 박수원 PD는 코미디부터 스릴러까지 다양한 장르를 흥미롭게 직조했을뿐 아니라, 각종 패러디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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