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보건복지부 장관에 권덕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을 지명했다. 권 후보자는 복지부 출신 인물로, 복지부 기획관리실 기획예산담당관으로 임용돼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에는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냈지만, 이후 2005년 복지부 정책홍보관리실 재정기획관으로 복지부에 돌아왔다. 권 원장은 복지부에서 보건의료정책과장, 보육정책관, 복지정책관, 기획조정실장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복지부 차관을 지낸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의료계는 권 후보자의 장관 내정으로 인해 정부와 의료계 간 큰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권 후보자 지난 2014년 원격의료 저지를 위한 투쟁 당시 보건복지부 대표로서 의협과의 협상과 소통을 맡았던 인연이 있다”며 “의료계를 존중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자세로 9·4 의정합의의 충실한 이행과 코로나19 대응 민관협력에 나선다면 진정한 협치의 파트너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은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문 정부 초기부터 계속해오면서 문재인 케어, 수가협상 등 의료계와 계속 냉기류와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우리 협회의 의견과 정부와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의·정 관계 개선점이 필요한 상황이라 여겨진다. 신임 후보자는 복지부에 더 오래 있었고 협회와도 이전에 협상했던 당사자이므로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유연하게 대화하고 존중하면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복지부 내부 승진으로 장관 자리에 올라서는 게 20년 만이라고 들었다”며 “이로 인해 의료계와의 관계나 역사 등을 보다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여러 현안이 의료계와 정부가 평행선을 달렸다면, 접점을 찾아갈 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권 후보자의 지명에 우려를 표명했다. 권 후보자가 이전 박근혜 정부 시절,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등을 담당했었기 때문이다. 해당 대책에서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법인약국, 병원의 영리자회사 허용 등이 담겨 보건의료노조 등에서 폐기를 촉구했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권 후보자가 의료산업 정책을 담당해왔고, 현재 보건산업진흥원장 출신으로 그 분야 일만 해왔다”며 “이로 인해 보건의료시민단체와 계속 대립각을 세웠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사회·정책적 공공성을 강조해야 하는데 의료산업화를 주로 맡았던 권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고 하니 우려가 크다”며 “코로나19 이슈 속에서 복지부는 지금도 의료규제 완화가 이뤄지고 있다. 병상 확보에 올인해도 여력이나 시간이 모자를 텐데, 정신을 못 차린 게 아닌가 싶다. 백신이 나온다지만, 코로나19 이후에도 감염병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꾸기 위해선 공공의료기관 확충 등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보다 정교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실손보험이 확대되면서 국민으로 하여금 건강보험에 대한 법정본인부담금에 대한 의식이 완화되고 있다”며 “급여하고 있는 항목에 대해선 실손보험에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손보험으로 인해 불필요한 의료가 늘어나고, 공급자도 부추기는 경향이 있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문 케어로 급여를 확대할 때마다 실손보험으로 대체한다면, 당장 돈을 내지 않는 것 같지만, 건강보험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손보험이 건강보험의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국민의 의료이용을 힘들게 할 것. 복지부장관이 타 부처와의 조정을 통해 금융당국과 해결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의 성공이 여기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권덕철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22일 열린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국회는 오는 28일까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문 대통령에게 제출해야 한다. 만약 국회가 이 기간 내 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10일 이내의 범위에서 기한을 정해 보고서를 다시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국회가 응하지 않았을 경우, 문 대통령은 그대로 임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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