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적어도 나는 여든 살까지 갔을 세살 버릇을 육십도 전에 고쳤다고 생각하니 달팽이처럼 돌돌 말린 치약 껍질이 만족스러웠다. 알뜰살뜰히 눌러써 그냥 버려버리기엔 마지막 잎새처럼 아까운 그것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도 매년 한가지쯤은 마음먹은 걸 지키며 나아지고 싶다고, 남들 보기엔 하찮고 시시할 테지만 이런 버릇이라도 고치겠다고... 참으로 고무적인 새해의 출발이었다.
작년엔 새해라고 좀 더 신경 써 닦은 세면대에서 새 아침의 세수를 하는데, 다시 마구 눌러 짠 치약이 보였다. 해도, 달도, 날도, 마침 비누까지 모든 게 새것이었는데 구렁이마냥 쭈글쭈글 주름져 뒹구는 치약을 보자 세살 버릇을 고쳤다고 좋아했던 나의 특별한 해는 어디 갔던가 싶었다. 이렇게 저렇게 써본
결과, 사실 치약은 어디서부터 짜든 별 차이가 없다고 느껴졌었다. 그러니 치약을 위로 올려 쓰겠단 마음은 없어졌고, 애초에 그것 때문에 뭔가를 이룬 듯 했던 것도 가소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때는 바야흐로 새해 벽두였고 나는 다시 나를 격려했다. ‘뭘 고쳐야할지 모를 뿐이지, 나는 뭔가 고치려면 고칠 수 있는 인간이다. 뭘 마음먹어야 할지를 몰라서 그렇지, 뭔가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다.’라고...
내가 ‘그런 사람’이란 건 의미 있고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또 뭔가 내가 제대로 고치고 마음먹을 것을 찾아보려 했다. 이 나이에 무얼 바꾸랴, 하며 그냥저냥 살기보단 꽤 괜찮은 출발이었다.
올해는 따로 숨어서 구원을 기다리는 패잔병처럼 한해를 시작했다. 대체 언제 누가 시간에 금을 그어 하루를 만들고 그걸 365개씩 묶어 한 해를 만들고 했던지, 시간의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데 그저 새해라니 새 달력만 펼쳐놓고 맞은 해였다. 새해가 되었지만 코로나도 경기도 달라진 건 없었다. 가족도 친척도 만날 수 없었다. 호젓하게 5인 이하의 차례를 지내며 조상님의 영혼도 한꺼번에 몰려오실까 몸을 사려야 했다.
내일, 그 하루도 예측할 수 없음은 작년 한 해 동안 뼈저리게 겪은 뒤였다. 그러니 누군가는 꿈이나 계획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도 하였다. 게다가 요즘 나는 점점 깜빡깜빡 잊었다. 뭔가 마음을 먹어도 그 자체를 잊어, 앞으론 뭘 하리란 다짐을 그 다음 날에도 잊어버렸다. 나는 신통한 계획도 못 세우지만 때로는 안타깝게도 안 지키는 게 아니라 못 지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나를 변명할 순 없고, 나에게 야심과 젊음이 없을 뿐 희망과 남은 인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새로운 해를 바라면서도 가장 새해답지 않은 2021년도 나흘이 지나고 있다. 남들 보기엔 보잘것없겠지만, 나는 올해도 좋지 못한 버릇을 적어도 하나쯤은 고치고 나쁜 마음도 버리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거창하거나 특별하진 않아도 어릴 땐 바른 어린이가 되는 꿈을 갖고 살았으니 앞으론 바른 노인이 되고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잘 지키지 못하고 잘 잊기도 하지만 매일 새롭게 계획을 세운다.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거듭 마음을 먹는다.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인 것은, 느끼고 판단하고 계획하는 것 이상으로 어쩌면 반성하고 되돌려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존재라서가 아닐까. 아무런 경황이나 생각 없이 시작한 한 해라도 늦지 않았다. 새해 첫날 지키려한 것이 벌써 깨졌어도 실망할 필요 없다. 오늘은 겨우 1월의 넷째 날이다. 안 지켰거나 못 지켰거나 오늘은 그 작심삼일(作心三日)의 다음 날이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우리 앞날의 첫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