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병상 간격 늘리자는 '감염 예방안'에...의료계 "탁상공론"

정신병원 병상 간격 늘리자는 '감염 예방안'에...의료계 "탁상공론"

기사승인 2021-01-05 03:02:01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정신의료기관 입원실당 병상수를 줄이고, 병상 간 거리를 넓게 조정하도록 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정신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4일 성명을 통해 "정신질환 진료 체계에 엄청난 혼돈을 초래할 것"이라며 해당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정신의료기관의 환자 및 의료진 안전과 입원실 환경의 개선을 위한 감염관리 강화조치가 담긴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을 지난해 11월 26일 입법예고한 바 있다.

입법예고 주요 내용은 ▲입원실 당 병상 수를 최대 10병상에서 6병상 이하로 줄이고 ▲입원실 면적 기준을 현행 1인실 6.3㎡에서 10㎡로, 다인실은 환자 1인당 4.3㎡에서 6.3㎡로 강화 ▲병상 간 이격거리는 1.5m 이상 ▲입원실에 화장실과 손 씻기 및 환기 시설 설치 ▲300병상 이상 정신병원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격리병실을 별도로 두기 등이다. 특히 정부는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3월 5일부터 시설 및 규격기준을 적용할 방침으로, 시행일 후 신규 개설 허가 신청 정신의료기관에는 모두 이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학회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도 의료현장의 현실에 맞지 않을 경우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며 원점 검토를 요구했다. 

먼저 학회는 해당 개정안이 실태조사와 개선연구,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학회는 "바이러스 감염 차단에 현재의 개정안이 정신의료기관의 병실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현재 일반 병원의 경우 입원실 면적 기준 1인당 4.3㎡, 병상 간 이격거리 1m 수준의 시설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 기준도 메르스 이후 강화된 기준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 정신의료기관 시설기준을 이보다 높은 병상 면적기준인 1인당 6.3㎡, 이격거리 1.5m로 정한 것은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이들은 "정신의료기관의 수가와 의료급여정액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개선책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병실급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도 지적했다.

정신질환 환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학회는 "정신재활프로그램이 입원치료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병상에 있기 보다는 작업치료실에 행해지는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간이 많은 특성이 있다"며 "재활프로그램의 특성상 밀접한 접촉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에 적합한 이격 거리 증가와 같은 단순한 시설적인 접근은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위해 입원환자들에게 자기의 침상에서 떠나지 말도록 강제하지 않는 이상 감염병 전파 차단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했다.

학회는 이같은 조치가 입원하는 정신질환 환자들을 병상에 강제격리하게 만드는 부적절한 방향으로 튈 수도 있다고도 우려했다.

이들은 "오히려 의료기관들이 시설 기준에 맞춰 생존하기 위해 집단치료실, 재활치료실을 병실로 전환하여 적절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지 못하게 되는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높다. 그러므로 정신병동 시설기준에 의료법 기준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과유불급일 뿐 아니라 실효성이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급격한 시설 규정의 적용에 따라 2년내로 의원급의 입원병실은 폐업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학회는 내다봤다. 이들은 "150병상의 중소규모 입원시설은 병상 수의 40%-50% 정도, 대형정신병원도 병상 수의 40%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병상보다는) 병동 기준으로 감염병 차단이 이루어지는 방안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은 현장에 있는 실무진들은 모두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신의료기관 입원병실 시설기준에 의료법 기준이나 더 강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이하 의사회)도 해당 개정안 입법예고에 반발했다.

의사회는 "정신과 병상 간의 간격을 지금보다 50cm 늘린다고 감염병의 전파를 예방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생활이라는 특성상 병상 거리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감염병이 유입되는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기 때문"이라며 "시설 보완으로 갑자기 퇴원해야 하는 환자들은 갈 곳이 없고, 급격한 변화로 인한 부작용은 오롯이 환자와 가족들의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이 개정안이 그대로 실행되게 될 경우 의료기관은 공사를 위해서 휴원하거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폐원할 수밖에 없다"며 "수많은 환자들이 갈 곳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경우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또한 의료기관에 고용된 수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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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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