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종료 아동, 안정적인 정착 위해" 채용 낸 기업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달 29일 '공개채용을 하고자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일반 사업체가 알바몬, 사람인, 잡코리아 등 구인구직 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올리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채용 공고를 살펴보면 채용 인원, 업무 내용, 근무 시간, 복지 등 다른 일반 사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회사의 채용 과정이 특별한 건 우대 사항이 '시설 퇴소생'이란 점이다.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보호 종료 아동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부모의 부재, 보호자의 양육 문제 등으로 인해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 살던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나가야 한다. 법적 성인이 되면서 더는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2019년 보육원을 떠난 보호 종료 아동은 2587명에 달한다.
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지원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 이어져 왔다. 이들에게 500만원 가량의 자립 정착금과 3년간 매달 30만원 수준의 자립 수당이 제공된다. 하지만, 퇴소 기간이 돼 사회로 떠밀리듯 독립해야 하는 아이들이 취업 등을 통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선 부족할 수밖에 없단 지적이 많다.
이 글을 올린 GB스타일 물류센터장 김동희씨는 "어린 시절 친구가 고교 졸업 후 보호 해체로 사회에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가 수년이 지나 만난 경험이 있다"면서 "(그 친구가 어린 나이에) 시설을 나갈 때 받은 돈은 사기를 당해 잃었다고 한다. 이후 나쁜 길로 빠진 친구의 인생은 더 나쁜 쪽으로 흘렀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종료 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금전적인 기반뿐만 아니라, 의지하고 또 격려 같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같은 상황에 처한 많은 아동이 그 친구와 같은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 물류센터가 그 사회적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채용 공고를 냈다"고 설명했다.
나이와 학력에 기준을 두지 않은 것 역시 같은 이유다. 김씨는 "나쁜 길로 빠졌다가 새 각오로 다시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학력과 나이는 높은 벽일 뿐이다"면서 "이미 보호종료 이후 입사해 일하고 있는 직원은 성실하게 일해 정직원이 됐다. 나이와 학력은 업무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했다.
◇"기부했어요" 선한 영향력 퍼뜨리는 커뮤니티
온라인 커뮤니티는 최근 폭로의 장이 됐다. 약자의 억울한 목소리도 있지만, 검증되지 않은 의견을 내놓고 책임감 없는 악플을 다는 이들도 상당하다. 때문에 마녀사냥, 과도한 여론몰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순기능도 적지 않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이 플랫폼을 단순히 자신의 하소연이나 과거 경험을 폭로하기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 '봉사활동' 등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데에도 이용하고 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이나 위탁가정, 미혼모 시설 등 기부 참여를 독려하거나 기부 또는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후기를 남긴 게시글을 볼 수 있다.
김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커뮤니티에 이번 채용 공고를 올리기 전부터 보육원, 미혼모시설 등에 아동 이너웨어를 기부하고 이를 인증해 왔다.
김씨는 "커뮤니티 글을 보기만 하다가 시설 아동을 위한 관심과 기부 동참을 독려하는 한 회원의 글을 보고 함께하게 됐다"고 했다. 실제 해당 회원이 커뮤니티에 기부 동참을 호소하며 올린 글에는 수많은 회원이 각지에서 기부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다른 커뮤니티의 회원은 '오랜만에 기부하고 왔다'는 제목의 글과 인증 사진을 올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 사업장 사정이 좋지 않아 버티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금전적 기부 활동이 아니더라도 재능 또는 물품으로 기부하는 방법이 있어서 이렇게 방문했다"며 "(기부를 위한) 자세한 방법은 각 구청의 복지과 또는 사회복지과로 문의하면 된다"고 참여를 독려했다.
한 누리꾼도 커뮤니티에 청소년 생리대 정기후원 메시지 캡처본을 올리고 "학생이라 큰 금액은 못 하지만 정기후원을 한다"면서 "기부 금액 전부가 한 아이에게 필요한 만큼의 생리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안다. 그래도 한 장쯤은 (아이에게)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후원한다. 나중에 (돈) 벌이가 괜찮아지면 좀 더 많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다"고 남겼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누리꾼들의 선한 영향력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기부 게시글로 시작된 김씨 선행에 자극을 받은 또 다른 누리꾼은 바통을 이어 받듯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씨는 "회사 회장님 등 경영진이 취약계층 지원에 관심이 많다. 이번 미혼모 및 위탁모 가정에 대한 기부 건에 대해 회사에서 흔쾌히 지지해주셨고 앞으로도 무조건 찬성이라고 지원을 약속하셨다. 그래서 올해는 꼭 필요한 곳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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