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페이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사승인 2021-08-23 14:13:18
T1 미드라이너 '페이커' 이상혁.   라이엇게임즈 제공

[쿠키뉴스] 강한결 기자 = 올해 프로 생활 9년차를 맞이한 T1의 미드 라이너 ‘페이커’ 이상혁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다. 2013년 데뷔 이후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9회 우승,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3회 우승 등 전무후무한 커리어를 쌓았다.

LCK 최고참 이상혁은 올 여름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밥 먹듯이 하이퍼 캐리를 하는 전성기 경기력은 아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과감한 판단으로 클러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이 리크스를 감수하면서, 하이 리턴을 위해 플레이한다.

T1은 22일 오후 서울 종로 롤파크에서 열린 ‘2021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서머 스플릿 플레이오프(PO) 2라운드에서 젠지 e스포츠를 3대 1로 꺾었다. 결승전에 진출한 T1은 담원 기아, 젠지와 더불어 롤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T1은 1세트 탑 ‘레넥톤’, 미드 ‘이렐리아’ 등 라인전이 강력한 챔피언으로 조합을 구성했다. 조합 특성상 T1이 승리하려면 난전을 유도하며 초중반에 상대를 압살해야 했다. 하지만 젠지가 오히려 라인전을 리드하면서, T1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특히 상대방을 잡아먹어야 하는 이상혁의 이렐리아는 젠지 정글-미드 듀오의 노림수로 3번이나 전사했다. 전반적으로 T1의 모든 라이너가 부진했지만, 이상혁의 데스는 패배의 중대한 원인이 됐다.

결정적인 실책으로 다전제 1세트를 내주고 중압감이 있을 법했지만, 이상혁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대신 더욱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했고, 과감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슈퍼 플레이를 연달아 선보였다.    

2세트부터 T1은 밴픽을 대폭 수정했다. 이상혁은 이번 여름 가장 많이 플레이한 ‘라이즈’를 선택했다. 포탑 수성을 위해 탑 라인에서 다소 허무하게 잡힌 장면을 제외하면, 이상혁은 경기 내내 고른 활약을 펼쳤다. 궁극기 '공간왜곡(R)'을 활용한 변수 창출도 나쁘지 않았다.

좋은 움직임으로 스킬을 피하며 전세를 뒤집은 이상혁의 '라이즈'.   LCK 유튜브 캡처

세트 스코어 1대 1 상황에서 재차 라이즈를 선택한 이상혁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줬다. 7분 경 순간이동을 사용한 젠지 미드 라이너 ‘비디디’ 곽보성의 ‘신드라’가 ‘라스칼’ 김광희 ‘카밀’과 함께 T1 탑 라이너 ‘칸나’ 김창동의 ‘나르’를 공략했다. 라이즈도 궁극기를 사용해 합류했지만, 나르가 빠르게 전사하면서 위기에 빠졌다.

2대 1 상황에서 이상혁은 상대방의 스킬을 피하면서 카밀을 빈사상태로 만들었다. 두 챔피언을 묶어두는 동안 ‘케리아’ 류민석의 ‘브라움’이 순간이동으로 합류했고, 결과적으로 T1은 2대 1 킬 교환에 성공하면서 득점했다. T1은 5분 간격으로 벌어진 탑 라인 교전에서도 궁극기를 활용한 라이즈의 합류로 승리했다.

초반의 이득으로 T1은 리드를 가져왔지만, 중반까지 팽팽한 흐름은 이어졌다.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 이상혁의 슈퍼 플레이가 나왔다. 37분 경 T1은 인원을 배분해 내셔남작 사냥과 바텀 사이드라인 방어를 동시에 진행했다. 상대가 바론을 간다고 판단한 젠지는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사이드라인에 힘을 주고 바텀 억제기를 공략했다.

 점멸로 깜짝 등장해 '신드라'를 무력화한 '라이즈'.   LCK 유튜브 캡처

신드라와 카밀은 나르가 홀로 사이드를 지키는 것을 보고 싸움을 열었다. 이때 사각(死角)에서 점멸로 등장한 라이즈가 신드라를 습격했다. 신드라는 ‘존야의 모래시계’ 이후 점멸로 탈출하려 했지만, 메가나르의 점멸+‘나르!(R)'로 제압됐다. 이후 라이즈는 카밀의 반격을 흘려낸 뒤 궁극기를 활용해 안전하게 탈출했다. 라이즈와 나르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나머지 3명의 선수들은 손쉽게 바론 버프를 획득했고, 젠지 백도어 노림수를 막아냈다.

이상혁의 슈퍼 플레이 이후 승기를 잡은 T1은 3세트를 따냈고, 4세트에서도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종료 후 공동 인터뷰에서 이상혁은 승리 “오늘 경기가 가장 큰 고비라고 생각했는데, 잘 넘겨서 다행”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동시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상혁은 “다전제 1세트는 승패는 나머지 세트에 모두 영향을 주지만, 저는 경기에 져도 다음 세트에서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서 “1세트 패배 이후에도 밴픽이 수정되면 충분히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상혁의 확신은 인게임 플레이에서도 묻어났다. 이상혁은 서머 스플릿 2라운드에서도 라이즈를 사용한 슈퍼 플레이를 몇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지난 8일 DRX와의 2세트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상혁의 라이즈는 점멸 이후 풀콤보로 잘 큰 ‘표식’ 홍창현의 ‘니달리’를 잡았다. 이를 바탕으로 T1은 어려운 경기를 역전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플레이의 첫 번째 시도가 치명적인 ‘쓰로잉(실수)’이 됐다는 점이다. 지난달 11일 진행된 T1과 농심 레드포스와의 경기에서 라이즈를 고른 이상혁은 ‘고리’ 김태우의 ‘루시안’을 잡기 위해 점멸을 써서 진입했다. 루시안을 잡긴 했지만, 조합의 중심인 라이즈가 다소 허무하게 잡히면서 T1은 흐름을 내주고 패배했다.

LoL에는 “슈퍼 플레이와 쓰로잉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격언이 있다. 치명적인 실패를 겪었지만, 이상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이 리스크 하이리턴 플레이를 반복했다. 이 판단은 결국 승부의 분기점이 되는 슈퍼 플레이가 됐다. LCK 최고참 미드라이너는 과거의 실수를 곱씹지 않는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함이야말로 이상혁의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실패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은 그를 LoL의 전설로 만들었다. 

sh04khk@kukinews.com
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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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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