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미, 하이틴이 좀비물을 만났을 때 [하이틴 in 케이팝]

선미, 하이틴이 좀비물을 만났을 때 [하이틴 in 케이팝]

기사승인 2021-08-27 07:00:27
가수 선미 ‘유 캔트 싯 위드 어스’(You can’t sit with us) 뮤직비디오.   유튜브 캡처.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가수 선미가 지난 6일 공개한 신곡의 제목 ‘유 캔트 싯 위드 어스’(You can’t sit with us)는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감독 마크 워터스)에 나오는 대사다. 자타공인 노스쇼어 고등학교 최고의 퀸카였던 레지나 조지(레이첼 맥아담스)가 친구들과 정한 드레스코드를 어긴 채 교내 식당에 나타나자, 그를 사랑하는 동시에 질투하던 그레첸 위너스(레이시 샤버트)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쏘아붙인다. “유 캔트 싯 위드 어스!”(넌 우리와 앉을 수 없어!)

제목이 암시하듯, ‘유 캔트 싯 위드 어스’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복고 분위기를 반영한 노래다. 멜라니 폰타니 등 해외 작곡가들은 사운드에 1980년대 신스팝을 이식했고, 뮤직비디오는 2000년대 초중반 사랑받았던 하이틴 영화 풍으로 연출됐다. 큐빅으로 장식한 유선 전화기, 뒷부분이 툭 튀어나온 CRT 모니터 등 뮤직비디오 곳곳에 배치된 소품에서 Y2K(Year 2000)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난다. 선미가 손에 든 분홍색 모토로라 휴대폰은 2009년 생산 중단된 모델이라, 수험생이 사용하던 중고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유 캔트 싯 위드 어스’ 뮤직비디오.   유튜브 캡처.
다만 선미는 2000년대를 단순 패러디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호러로, 호러에서 좀비물로, 좀비물에서 다시 로맨스로 장르를 급선회시킨다. 뮤직비디오에서 선미는 집 앞으로 찾아와 용서를 비는 남자친구에게 화분을 날려 명중시키고, 별안간 나타난 좀비 떼들을 총과 주먹으로 제압한다. ‘네가 밉지만 네가 날 바라봐주길 바란다’는, 다소 평범한 가사 내용은 종잡을 수 없는 뮤직비디오와 어우러져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미는 신보 발매를 앞두고 열었던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신나고 경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선미는 ‘똘끼’와 광기 사이를 오가는 엉뚱함으로 자신 음악에 독특한 톤 앤 매너를 만들어 왔다. 그는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면서도, 뮤직비디오에선 심드렁한 표정으로 남자주인공을 파괴하고(원더걸스 ‘와이 소 론리’), 카메라를 향해 욕을 하듯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기도(‘가시나’) 했다. ‘유 캔트 싯 위드 어스’ 뮤직비디오에서 선미는 좀비가 된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는 남자친구의 품에 기쁘게 안겨 있지만, 좀비들 틈바구니에서 태연하게 웃으며 춤추던 모습이 기묘한 잔상을 남긴다. 선미가 변주한 이 하이틴 영화는 발랄하면서도 불길하고, 불길하면서도 오락적이다. 언제나 그랬듯, 도무지 다음을 예측할 수가 없다. 선미의 앞날이 그래서 늘 궁금하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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