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암시하듯, ‘유 캔트 싯 위드 어스’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복고 분위기를 반영한 노래다. 멜라니 폰타니 등 해외 작곡가들은 사운드에 1980년대 신스팝을 이식했고, 뮤직비디오는 2000년대 초중반 사랑받았던 하이틴 영화 풍으로 연출됐다. 큐빅으로 장식한 유선 전화기, 뒷부분이 툭 튀어나온 CRT 모니터 등 뮤직비디오 곳곳에 배치된 소품에서 Y2K(Year 2000) 스타일이 진하게 묻어난다. 선미가 손에 든 분홍색 모토로라 휴대폰은 2009년 생산 중단된 모델이라, 수험생이 사용하던 중고품을 구매했다고 한다.
다만 선미는 2000년대를 단순 패러디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호러로, 호러에서 좀비물로, 좀비물에서 다시 로맨스로 장르를 급선회시킨다. 뮤직비디오에서 선미는 집 앞으로 찾아와 용서를 비는 남자친구에게 화분을 날려 명중시키고, 별안간 나타난 좀비 떼들을 총과 주먹으로 제압한다. ‘네가 밉지만 네가 날 바라봐주길 바란다’는, 다소 평범한 가사 내용은 종잡을 수 없는 뮤직비디오와 어우러져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선미는 신보 발매를 앞두고 열었던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신나고 경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선미는 ‘똘끼’와 광기 사이를 오가는 엉뚱함으로 자신 음악에 독특한 톤 앤 매너를 만들어 왔다. 그는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면서도, 뮤직비디오에선 심드렁한 표정으로 남자주인공을 파괴하고(원더걸스 ‘와이 소 론리’), 카메라를 향해 욕을 하듯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기도(‘가시나’) 했다. ‘유 캔트 싯 위드 어스’ 뮤직비디오에서 선미는 좀비가 된 남자친구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는 남자친구의 품에 기쁘게 안겨 있지만, 좀비들 틈바구니에서 태연하게 웃으며 춤추던 모습이 기묘한 잔상을 남긴다. 선미가 변주한 이 하이틴 영화는 발랄하면서도 불길하고, 불길하면서도 오락적이다. 언제나 그랬듯, 도무지 다음을 예측할 수가 없다. 선미의 앞날이 그래서 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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