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원 없는 일상회복? 간호사 사직 막을 생각 없나봐요”

“충원 없는 일상회복? 간호사 사직 막을 생각 없나봐요”

기사승인 2021-11-05 07:00:09
간호사들이 의료기관 내 간호사 배치기준 강화를 촉구하는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연대본부 제공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간호사 충원 없이는 온전한 일상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거세다.

간호사 부족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고질적인 문제였다. 보건복지부가 분석한 OECD 보건통계 2021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간호인력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포함해 인구 1000명당 7.9명으로 OECD 평균 9.4명보다 약 2명 적다. 간호조무사를 제외한 간호사 수는 1000명당 4.2명으로 OECD 평균보다 5명 이상 부족하다.

간호인력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은 의료기관이 흔하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조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간호사 법정 정원 기준을 미준수한 의료기관은 전국에 7147개소에 달했다. 2021년 4월 기준 전국의 의료기관 가운데 30.3%가 정원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30~99병상을 보유한 병원의 과반인 53.3%, 100 병상 이상을 보유한 종합병원의 11.6%가 의료법이 명시한 간호사 정원 기준보다 적은 인원의 간호사를 고용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간호사들의 피로 누적은 임계점에 달했다. 1인당 10명 이상의 환자를 간호하며 3교대 근무 및 초과근무를 했던 평상시 업무에 코로나19 대응 업무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최초 확산한 지난해 1월부터 의료연대본부와 행동하는간호사회 등을 통해 간호계는 간호사 배치 기준을 강화하고, 의료기관이 충분한 인원의 간호사를 고용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법률과 제도에 별다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간호계는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간호사 충원 및 배치기준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간호인력인권법' 제정 운동을 진행 중이다. 의료연대본부를 중심으로 진행된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간호사들이 제시한 법안은 △일반병동 환자 12인당 간호사 1인 이상 △환자 수와 관계없이 병동 단위의 근무조별 간호사 수 최소 2인 이상 △중환자실 환자 2인당 간호사 1인 이상 및 단위의 근무조별 간호사 수 최소 3인 이상 등의 배치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이 기준을 어기는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과 벌금 규정도 포함해, 법률이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이 청원은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의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간호계와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다. 간호사 충원 및 업무 환경 개선 조치 없이 코로나19 방역을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단계적 일상회복’을 감행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정부가 발표한 코로나 19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에 포함된 의료·방역 대응 추진 방향에는 간호사 충원이 언급되지 않았다. 특히, ‘가용병상 사전파악, 폭발적 확산 시 (병상) 신속확보 대책’ 등의 추상적인 내용이 나열돼 간호계의 비난을 샀다. 간호사 충원과 근무 환경 개선 없이 정부의 계획대로 병상만 확보한다면, 그 병상을 채울 환자들을 간호하는 업무는 기존에 부족한 인원으로 남아있던 간호사들에게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숙련된 간호사들이 과로와 소진으로 의료기관을 떠나고, 신규 간호사들은 적절한 교육기간 없이 곧장 업무에 투입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단계적 일상회복이 감행됐지만, 간호사들의 일상회복은 요원한 상태다. 의료연대본부를 중심으로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오는 11일 파업을 예고했다.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경오 간호사는 “(보라매병원은) 시립병원 중 가장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은데도 인력은 2차 병원 수준이라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환자를 직접 보지 않는 수간호사, 처치전담, 위생간호사가 인력기준에 포함되어 있어, 실제로는 간호사 1인당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12명씩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 9월29일 보건복지부 감염병간호인력기준이 만들어진 후 보라매병원에 기준을 준용하라고 요구했으나, 병원 측은 ‘정부로부터 지침이 내려오면 마련해보겠다’거나 ‘재정지원 없이는 안한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병원이 간호사 사직을 막을 생각이 없는 듯 하다”고 날을 세웠다.

박경득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장은 “파업의 핵심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축소”라며 “국립대 병원부터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줄이는 시범사업을 먼저 시행하고, 이에 따른 예산배정을 (정부에)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국립대 병원 소관 부처인) 교육부 면담을 통해 구체적인 요청을 넣은 상태지만, 현재 답변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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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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