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가장 어두운 곳에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폭죽이 춤을 추는 무대, 그 화려한 곳 뒤편이 그들의 자리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으로 대중음악 공연이 멈추자 그들은 설 곳을 잃었다. 비용은 그대로인데 손해는 자꾸 나고, 이를 보전받을 길은 사실상 막혔다. 음향과 조명 등 공연 장비를 제공·가동하는 속칭 ‘하드업체’의 이야기다.
먼지 쌓인 장비, 떠나가는 사람들
가요 관계자 A씨는 최근 연말 공연을 준비하면서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함께 일할 조명 감독을 구하지 못하면서다. 함께 일하던 조명 감독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극장으로 적을 옮겼다. 천만다행으로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조명 감독을 수소문해 무사히 공연을 마쳤지만, A씨는 그 때를 떠올리면 간담이 서늘하다. A씨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음향·조명 감독님들은 물론, 노하우를 가진 경호업체 인력도 이전보다 줄어들어 공연 준비에 지장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생계 때문이에요.” 수십 년간 음향감독으로 일한 고종진 한국라이브사운드 협회 회장은 말했다. “2년 가까이 공연을 못했잖아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다가 결국 다른 업종으로 옮겨가는 거죠. 회사가 폐업해서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을 테고요.”
업계에 발을 붙인 입장에서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전문 인력으로 성장하려면 실전에 투입돼 경험을 쌓아야 한다. 공연이 멈추면서 경력 쌓을 길이 사라졌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은 “10년 넘게 경력을 쌓은 전문 인력이 계속 이탈하면 완성도 높은 공연을 만들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며 “관객이 공연에 만족하지 못하면 공연장에 발길을 끊을 테고, 공연 업계 상황은 더욱 악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고 회장은 “인건비 외에 공연 장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이라고 했다. 수억~수십억 원에 달하는 공연 장비를 임대하려면 매달 비용이 빠져나가지만, 정작 장비를 쓰지 못해 먼지만 쌓인다는 설명이다. 고 회장은 “장비는 계속 사용하고 수리해야 좋은 컨디션이 유지되는데, 지금은 창고에서 낡아가기만 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계약서 없이 일해 손실 보상도 막막…업종 분류 필요”
지난달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로 대중음악 공연에도 빗장이 풀렸지만 잠시뿐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거리두기 강화안이 시행되는 내년 1월2일까지 필수 행사를 제외한 비정규 공연시설 내 공연은 승인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문체부 승인을 받으면 비정규 공연시설에서도 5000석 미만 규모로 공연을 열 수 있었다. 대중음악 공연이 끊기면 ‘하드업체’에도 보릿고개가 다시 시작된다. 매출 절반 이상을 책임졌던 지자체·관공서 행사도 줄줄이 취소돼 ‘하드업체’는 그야말로 사지에 내몰렸다.
문제는 공연·행사 취소로 인해 손해를 봐도 이를 보상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 일을 맡기는 관행 때문이다. 고 회장은 “주관사는 공연 기획사나 행사 대행사와 계약서를 쓰고 일하지만, ‘하드업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고 했다. 문체부가 2년 전 공연예술기술지원 표준근로계약서를 마련해 보급했지만, 계약서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고 회장은 “공연 장비를 이미 설치한 상태에서 공연이 급하게 취소되면 피해가 상당하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피해를 입증할 수가 없다. 협력사가 피해 보상을 하지 않아도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 회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명확한 업종 분류”라고 주장한다. 현재 ‘하드업체’들은 이벤트업, 서비스업, 임대업 등 회사마다 제각기 다른 업종으로 분류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지원금이나 손실 보상금을 받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고 회장은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공연 지원 업종에 대한 업종 분류 코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음향·조명·영상·무대 관련 종사자들은 ‘K컬처’의 한 축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하루 빨리 공연 지원 업종에도 독자적인 업종 분류 코드가 생겨 피해나 손실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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