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논의, 결국 내년으로

간호법 제정 논의, 결국 내년으로

직능단체 간 의견 평행선… 제정까지 진통 예상
의협 “의료인 간 업무범위 이해상충 우려”
간협 “간호사 직종만의 이익 위한 법안 통과 불가”

기사승인 2021-12-31 16:25:30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과 전국 간호대학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정기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제공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논의가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새해를 맞게 됐다. 의료계 의견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만큼, 새해에도 간호법을 둘러싼 직능 단체 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적정 인력 수급 기준 등을 규정하기 위한 법률이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의 광범위한 업무 특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과 관련한 사항을 규정한 독자적인 법률을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간호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간호인력의 수급과 교육 등에 관한 사항을 체계적으로 법제화해야 현재 의료기관 일선에서 발생하는 진료보조인력(PA) 및 간호사 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지난달 24일 간호법이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되면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간호계는 국회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며 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해 왔다. 대한간호협회는 매주 수요일 정지 집회를 진행하며 간호법이 간호사의 업무 환경 개선뿐 아니라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임을 피력하고 있다.

대학생들도 간호계의 요청에 목소리를 더했다. 29일 간호대학생들이 대한간호협회의 정기 집회에 동참해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동참선언문 발표에 나선 김경희 KNA 차세대 간호리더 전국부회장은 “눈앞에 펼쳐진 암담한 현실과 슬픈 소식을 들으면서 계속 이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인지 수없이 고민하고 주저할 때가 많다”며 “전국의 간호대학에 재학 중인 12만 간호청년들이 간호전문직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일평생 의료인으로서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간호법을 통해 제반 여건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김 부회장은 대구가톨릭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이다.

간호법 연내 재정 요청은 관철하지 못했지만, 대한간호협회는 계속해서 국회를 재촉할 방침이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은 “2022년에는 전국 46만 간호사와 12만 간호대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염원해 온 간호법 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며 신년사를 통해 강조했다.

신 회장은 “간호사는 의사로부터 진료에 필요한 업무 지시를 받을 뿐 아니라, 근로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이중적인 종속관계에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의료관행에 맞서 환자의 편에 서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에서 의사 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임에도 간호사에게 약 처방이 가능한 의사 아이디를 빌려주고 대리처방을 시키거나, 수술 등 불법행위를 하도록 했음에도 우리는 속 시원히 반대 목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변화된 간호사의 업무와 역할을 변화된 보건의료 환경에 맞도록 제대로 담아내겠다”며 “우리 간호사에게 주어진 면허가 ‘7년짜리 면허’가 아닌 ‘평생 면허’가 되도록 마침표를 찍겠다”고 강조했다. 간호사들이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처우를 감당하지 못해, 면허가 있음에도 일찍 임상 현장을 떠나는 문제상황을 간호법 제정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간호계의 강한 요청이 지속되고 있지만, 간호법이 제정되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법 논의 초기부터 성명서를 발표하고 “간호법안은 보건의료직역간 갈등과 혼란만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간호사 직역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국민건강을 외면하는 법안”이라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는 각 직역의 업무범위를 의료법에 명확히 규정해 업무범위에 대한 혼란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직역 간 대립을 차단한다”며 “규정된 업무범위 및 요건 하에서 의료인의 의료행위 또는 진료보조가 시행될 수 있도록 해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보건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호법안은 해당 개별직역에 이익이 되는 내용만을 포함하고 불리한 내용을 배제해, 의료인 간 또는 의료인과 의료기사 간 업무범위에 대한 이해상충 및 해석상 대립으로 의료현장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간호조무사들 역시 간호법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간호법이 간호조무사들의 처우에 무관심한 이기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2013년~2015년 간호인력 개편 논의 당시 전문대에서 간호조무사를 양성하고 양성정원 관리를 추진했으나, 간호협회의 반대로 간호인력 개편이 무산됐다”며 간호사들의 간호법 제정 촉구에 협력할 수 없다고 입장문을 통해 밝혔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은 간호조무사 관련 규정 조항을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게 이 간호법안의 가장 큰 문제”라며 “간호사들의 권한은 강화하는 내용을 담아놓고, 간호조무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것이 지금 간호협회의 간호조무사에 대한 인식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호사 직종만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간호법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되며, 보건복지부 주관하에 관련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상생·발전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