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속 세상 떠난 노숙인, 거리 동료가 보낸 추도사

혹한 속 세상 떠난 노숙인, 거리 동료가 보낸 추도사

기사승인 2022-01-20 13:53:18
서울역 파출소 박아론 경위가 텐트를 돌며 노숙인의 안부를 살폈다.   사진=이소연 기자 
“선생님 괜찮으시죠?”, “일어나셨나요?” 20일 오전 9시15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 앞. 노란 조끼를 입은 서울특별시립 다시서기 서울역희망센터 관계자들이 역 앞 텐트를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노숙인들이 지난밤을 무사히 보냈는지 살피기 위해서다. 

오전 9시30분,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소속 박아론 경위도 텐트촌을 찾았다. ○○ 할아버지, △△씨. 노숙인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물었다. 한 노숙인이 제대로 인사에 답하지 못하자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이 나는지 확인했다. 

서울역 인근에는 지난해 말 노숙인을 위한 텐트가 30여동 생겼다. 정부가 아닌 인근 교회에서 지원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을 나야 하는 노숙인을 돕기 위해서다. 일부 텐트 겉면에는 명패처럼 노숙인의 이름이 적혔다. 

매서운 한파가 찾아온 11일 서울역 광장 주변에 설치된 노숙인 텐트 위에 눈이 쌓여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텐트만으로는 노숙인을 온전히 보호할 수 없었다. 혹한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서울역 광장에서 머물던 노숙인 2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12일 오전 텐트 안에서 6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다만 동사가 아닌 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일에도 50대 노숙인 김모씨가 서울역 광장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결국 숨졌다.

두 노숙인의 죽음 후, 광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늘어선 텐트도, 혹한 속 머무는 이들도 그대로다. 노숙인들은 “바뀐 것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노숙인은 텐트를 떠나 시설로 가기 힘든 상황이다. 16년째 거리 생활 중이라는 한 남성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우려로 시설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도 “앞서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에서 100명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며 “전파력 센 오미크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노숙인들이 시설로 향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을 떠난 거리 동료를 위해 70대 노숙인이 작성한 추도사. 홈리스행동 

다만 죽음을 잊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다. 서울역희망센터는 거리 상담 활동을 좀 더 강화했다. 주기적으로 텐트를 방문, 안부를 묻고 핫팩 등 물품을 건넨다. 최근에는 텐트에 거주하는 노숙인의 인적사항을 조사했다.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다.  

홈리스행동은 지난 14일 세상을 떠난 2명의 노숙인을 위한 ‘추모의 밤’을 진행했다. 광장의 또 다른 70대 노숙인이 추도사를 작성했다. 추도사에는 “조용히 텐트 치고 지내던 얼굴도 모르는 우리 옆의 형제가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 마음이 착잡하다”며 “열악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우리도 이런 상황이 없다 장담할 수 없다. 이분의 운명을 추모하며 우리 각자 서로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로 삼자”는 내용이 담겼다.

사회 비판도 있었다. “노숙 생활이 결코 우리들이 나태하고 게을러 된 탓만이 아니다. 나라의 책임이 더 크다” “우리들이 텐트 치고 사는 자체가 그 어떤 집회 시위보다 효과적인 무언의 시위다” “노숙인뿐만 아니라 이 땅의 최저층 서민을 위한 요원의 불길이 돼 빈부격차 양극화 해소에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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