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아니야?, 이젠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불러다오 [르포]

주유소 아니야?, 이젠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불러다오 [르포]

기사승인 2022-02-24 06:00:10
서울 금천구에 있는 국내 제1호 에너지 스테이션인 SK박미주유소.   사진=황인성 기자

서울과 안양을 잇는 시흥대로. SK 행복나비 마크가 새겨진 SK 주유소가 눈에 들어왔다. 외관상 여느 주유소와 다를 바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너지 슈퍼스테이션(Energy Super Station)’이란 글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이곳은 서울 금천구에 있는 국내 제1호 에너지 스테이션이다.

이곳은 휘발유·경유 등 기름만을 주유하는 주유소가 아니다. 연료전지 및 태양광 발전으로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전기차 충전 등에 사용하는 에너지 복합 공간이다. 지난 9일 개소했다.

SK박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은 SK에너지가 직영으로 운영하면서 향후 사업 확장 가능성을 보고 있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정책 기조로 기름이 원료인 내연기관차는 전기차로 대체될 전망인데 SK에너지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3일 오후 기자가 찾은 SK박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은 기름을 주유하기 위한 차들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전기를 공급받으려는 전기차도 모습을 보였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동시에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슈퍼스테이션만의 색다른 모습이었다.

SK박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에 설치된 연료전지 시설.   황인성 기자

SK에너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친환경 발전 설비가 있는 옥상에 오르자 정면에 연료전지 시설이 보였다. 냉장고 처럼 생겼지만 엄연한 연료전지 시설이다. 이 시설은 300 킬로와트(kW)급으로 SK에코플랜트가 설계·조달·시공(EPC)을 맡아 설치했다. 발전 가동을 통해 열과 전기를 발생시켜 자체 전력으로 일부를 소비하고, 남은 전력은 한국전력(이하 한전)에 판매하고 있다.

옥상 반대편에는 20.6kW급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돼 있다. 연료전지와 마찬가지로 자체 생산 친환경 전력을 일부 소비, 나머지는 한전 송전망을 통해 보내진다.

다만, 발전 시설에서 생산된 친환경 전기는 에너지스테이션 내에 있는 전기차 충전시설에는 전력을 공급하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발전 생산한 친환경 전기를 활용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현행 전기사업법상 판매가 제한된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갔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 겸업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어 발전사업자인 SK에너지는 전기판매업을 겸할 수 없다. 전기사업의 독점을 방지하고 경쟁을 도입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된 규정이지만, 전기 소비가 다변화될 미래 상황을 감안하면 관련법 재정비는 필요해 보였다.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1층 공간에서는 발전 설비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수급 현황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친환경 전력이 얼마나 생산·소비됐는지, 한전으로 보내지는 전력량이 얼마인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모니터링상 친환경 발전 설비의 에너지 효율은 60% 이상으로 꽤 준수한 편이다. 

SK박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에서 전기 충전 중인 전기차량 모습.   황인성 기자

또한,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뒤편에는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돼 있다. 건물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같은 공간 내 주유기 전기차 충전기가 함께 있는 모습은 다소 생경했다. SK박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국내 최고 용량인 350kW급 시설로 현대 아이오닉5 전기차 경우 18분이면 완충된다. 또 전기 차량 종류에 따라서 최적의 충전 상태를 감지하고, 전기를 공급해 주는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다. 

SK에너지는 20여분 가까이 되는 충전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이용자들을 위해 세차 청소기를 배치했다. SK 머핀카드 소지자는 이용이 무료고, 미소지자는 500원 동전을 투입해 사용할 수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아무리 충전이 빨라도 완전 충전까지는 십 여분의 시간이 걸린다”며 “충전을 기다리는 이용객들이 차량 내부를 청소할 수 있도록 진공 청소기 등 장비를 배치했고, 향후 이용객 니즈를 반영해 이색적인 공간으로 꾸밀 계획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SK박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전기차 충전시설.   황인성 기자

주유기와 전기공급기가 같은 공간에 있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일각의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SK에너지는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이중·삼중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전지와 태양광 발전 설비에서 이상이 감지되면 시설 가동이 전격 중단된다. 또 해당 정보는 실시간으로 담당자에게 전달된다. 

현재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주유소 내 연료전지 등의 설치는 금지돼 있다. 그럼에도 SK에너지는 산업부, 소방청과 수차례 협의를 거쳐 주유소 내 연료전지 설치에 대해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 적용에 합의했고, 위험성 평가 및 안전성 확보 방안을 마련한 끝에 주유소 내 연료전지를 설치해 국내 1호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개소할 수 있었다.

이번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의 안정적인 운영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향후 관련법 개정의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안전을 위해 주유소 내 연료전지 등의 설치를 금지하고 있는데 에너지스테이션 운영을 통해 안전 실증 사례가 나오면 제2·제3의 에너지스테이션 확대도 기대해볼 수 있다. 

또 SK그룹이 전사적으로 추진 중인 ‘딥체인지’와 방향성이 일치한다. 탄소중립 추세 속에 기존 정유 사업은 체질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석유 수요 회복이 예상되나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재 주유만을 하는 주유소들은 향후 전기나 수소를 충전하는 시설로 바뀌어야 한다.

오종훈 SK에너지 P&M CIC 대표는 지난 9일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개소식에서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은 기존의 전통 에너지 인프라를 친환경 에너지 거점으로 변모시키는 첫걸음으로 서울시내 주유소를 시작으로 수도권 및 전국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라며 “친환경 분산 발전과 친환경차 충전이 가능한 약 3000개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전국으로 확대 구축해 탄소중립 및 수소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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