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가 중고자동차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는다고 의결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인해 '허위·미끼 매물'이 줄어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대기업의 시장 독과점이 가격 상승 등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17일 중고차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기존 중고차 업체들의 매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소상공인 비중이 낮아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건인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기존 업계 피해는 예상되는 만큼 향후 중소기업 사업조정 심의회가 적정한 조치를 내놓을 수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업계는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등 시장이 선진화되고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중고차 매매업은 지난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신규 진입과 확장을 금지했다. 2019년 동반성장위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제한 기간이 끝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허용 근거를 마련했지만 양 업계간 갈등으로 인해 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2019년 중고차 매매업계의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 신청 후 3년간 끌어온 중고차 시장 개방 논란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게 됐다.
완성차 업계는 자신들이 직접 중고차를 판매하면 소비자 만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기업은 소비자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금력도 있어 시스템을 갖춰 혼탁한 중고차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연간 240만여 대가 거래되고 매출액이 약 12조 원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오랜 기간 ‘레몬마켓’이라고 불릴 정도로 품질이 떨어지고 허위 매물이 많아 구매를 꺼리는 소비자가 많은 상황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홍기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년)간 적발된 중고차 불법 매매건수는 1789건이다. 연도별로는 2016년 350건·2017년 273건·2018년 339건·2019년 276건·2020년 551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5월에는 허위 중고차 매물을 올린 사기단에 속아 시세보다 비싸게 화물차를 산 6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피해 사례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 결정으로 현대차와 더불어 기아와 한국GM, 르노코리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렌탈도 중고차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반면 중고차 업계는 국내 중고차 시장은 영세업체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현재 국내 중고차 업체 수는 6000여개, 종사자만 5만5000여명에 달한다. 대부분 영세업체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대기업 진입은 시장의 큰 변화를 끼칠 수 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또 대기업이 매물을 확보해 정밀진단 후 정비와 내외관 개선 등을 진행해 잔존가치(특정 상품에서 남은 수명의 가치)가 높아지면 신차 가격이 덩달아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중고차 시세가 오를 경우 신차 가격 책정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중고차 매매업자 단체인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는 "대기업의 시장 진출로 얻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자동차산업 생태계 파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더 클 것"이라며 "관련 산업 종사자 약 30만명의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중고차 매매업계는 중고차 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대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힘을 기를 시간이 필요하다"며 "현재 현대차 측과 자율조정 작업을 진행 중인데 진출을 3년 정도만 유예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사업자들만 소매사업을 영위토록 한 기존 중고차 시장 진입규제는 다른 국가에서 선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대기업 진출 허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중소 중고차매매업체의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대기업의 시장진입비율 조정 등 상생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는 "이미 대기업 진출이 허용된 만큼 기존의 영세업체들과 상생할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준다든가 허용 범위를 제한하는 등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성은 기자 seba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