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의 끝없는 표류 [K리그]

수원 삼성의 끝없는 표류 [K리그]

기사승인 2022-04-16 07:02:02
경기 패배 후 고개를 숙인 수원 삼성 선수단.   한국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 수원 삼성은 K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다. 1995년 창단 이후 4번의 리그 우승, 5차례의 FA컵 우승 등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 때는 국가대표 멤버가 즐비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를 빗대어 ‘레알 수원’이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수원은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 기획으로 바뀐 이후 쇠퇴기를 맞았다. 모기업의 투자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이전 같은 라인업을 구축하지 못했고, 팀 성적도 점점 내려갔다. 최근 5년간 리그 최고 성적은 6위(2018년, 2021년)에 불과하다. 2019시즌에는 FA컵을 들어올렸지만, 리그 성적은 8위로 저조했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지난 시즌 팀의 핵심 선수였던 정상빈.   한국프로축구연맹

투자가 줄어든건 사실이지만

2021시즌 기준 수원 선수단의 연봉 총액은 78억원으로 리그에서 7번째로 높았다. 2020년(87억원)에 비하면 규모가 더욱 줄었다. 선수단 연봉으로만 100억원 가까이 사용하던 과거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인다.

모기업 주체가 바뀐 이후 수원은 선수 영입에 인색했다. 몇 년 전 부터 투자하지 않았던 부분이 크다. 2020시즌 여름 이적시장 때는 유스 선수 두 명을 콜업한 것을 제외하면, 단 한 명의 선수도 여름 이적시장에서 영입하지 않았다. “‘0(영)입’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라이벌 팀들과 비교하면 더욱 대조된다. 리그 최대 라이벌인 서울은 2020년 기성용을 시작으로 지동원, 황인범 등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을 영입하며 명문 클럽으로 재도약을 추진했다. 지역 라이벌인 수원FC도 올 시즌에 이승우를 영입하며 영입 효과를 보고 있다.

반면 수원은 ‘셀링 클럽’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최근 몇 년 들어 주축 선수들을 대거 라이벌 팀 혹은 해외로 보냈다. 2020시즌 중반에는 ‘수비의 핵’ 홍철이 울산 현대로 떠났고, 올 시즌을 앞두고는 김민우(청두 룽청)와 정상빈(그라스호퍼) 등이 해외 무대로 떠났다. 

다만 올 시즌엔 덴마크 2부리그 득점왕 출신 공격수 그로닝을 필두로 이한도, 사리치, 불투이스, 정승원, 류승우 등을 영입하면서 로스터를 살찌웠다. 특히 수원은 그로닝을 영입할 때 막대한 이적료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올 시즌 성적은 1승 4무 4패(승점 7점)로 리그 11위까지 추락했다. 지난 2월 2라운드에서 지역 라이벌 수원FC를 상대로 1대 0으로 승리한 것을 제외하곤 승전고를 울린 적이 없다. 

자진 사퇴한 박건하 감독.   한국프로축구 연맹

계속되는 감독 잔혹사…3년간 감독 교체만 3번

결국 수원이 칼을 꺼내들었다. 수원은 15일 구단 공식 채널을 통해 “박건하 감독이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해왔다. 구단은 감독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020년 후반기부터 지휘봉을 잡은 박 전 감독은 지난 시즌 전반기에 김건희, 정상빈, 강현묵 등 구단의 산하 유스인 매탄고 출신 선수들을 중용해 전반기를 2위로 마감했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부터 힘을 쓰지 못했고, 지난 10일에는 라이벌인 FC서울과 슈퍼 매치에서 0대 2로 패배하자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박 감독은 역대 수원 사령탑 중 유일하게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감독으로 남게 됐다.

이로써 수원은 3년 새 감독이 3번이나 바뀌었다. 2018년 서정원 감독이 물러난 이후 이임생, 박건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재임 기간은 각각 1년 6개월에 불과하다. 과거 전성기를 이끈 김호 초대 감독이 8년, 차범근 2대 감독이 7년, 서정원 4대 감독이 6년 가량 팀을 맡았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대조된다.

또 구단이 ‘리얼 블루(수원 출신)’만 고집한다는 인식 때문에 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최전성기를 이끈 차 전 감독 시대 이후 지휘봉을 잡은 인물들은 이임생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구단 출신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팬은 “구단 출신 감독들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지만, 왜 프런트가 이를 고집하는 지 잘 모르겠다. 밖에 더 좋은 능력을 가진 감독들도 있는데 말이다”라며 “과거 선수 시절 좋은 기억을 남겨준 인물들이 감독으로 실패하고 떠날 때 마다 아쉬운 감정이 교차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원 삼성의 차기 감독으로 내정된 이병근 전 대구FC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명가 재건’은 실패로 끝나나

우승팀에서 중·상위권으로, 이제는 중위권 팀이 된 수원이다. 급기야는 강등을 우려하는 처지까지 몰렸다.

방향성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스터가 타 팀에 비해 밀리다 보니 성적이 나오지 않는데,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한 리빌딩에 몰두하는 구단도 아니다. 모기업 투자가 줄어든 2010년대 중반부터 ‘리빌딩’을 외쳐왔지만, 아직까지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차기 감독에게 많은 게 달렸다. 박 감독의 후임으로 팀의 지휘봉을 잡을 인물은 이병근 전 대구FC 감독이다. 현재 구단과 협상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부터 10년 간 수원에서 선수로 활약한 이 감독은 2018년 서정원 전 감독의 사퇴 이후에는 감독대행으로 수원을 지휘한 경험도 있다.

이 감독의 지도력은 축구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대구FC를 감독직을 맡은 지난해에는 구단 역사상 최고 성적인 3위와 FA컵 준우승을 견인했다. 선수단 장악력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이 감독은 ‘재도약’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았다. 만일 이 감독마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수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강등도 현실이 될 수 있다. 팬들이 또 한 명의 레전드를 잃는 것은 덤이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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