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 속에 생후 16개월만에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회는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8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양모 장모씨에 대해 징역 35년형을 확정했다.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등 혐의를 받았던 양부 안모씨도 징역 5년형을 확정했다.
장모씨는 2020년 6~10월 입양한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학대하고, 10월13일 복부에 손 또는 발로 강한 충격을 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안모씨는 이를 방임한 혐의를 받았다.
1‧2심 법원은 장모씨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해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장모씨는 2심에서 징역 35년형으로 감형됐다. 2심 재판부는 감형 배경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살인이 아니라는 점, 장씨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언급했다.
검찰은 형량이 낮다며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는 형량을 낮추는 건 가능하지만, 형량을 높일 수는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엄벌을 촉구해온 시민단체 회원들은 울분을 쏟아냈다. 시민단체 정인이를찾는사람들 관계자들은 대법원 정문 앞에 드러누워 항의했다. 대법원 앞에서 추모 행사를 이어온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 회원 일부는 판결을 듣고 오열했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너무 가슴이 아프고 35년 형량이 좀 많이 아쉽다”며 “이번 만큼은 법이 아동학대에 대한 경종을 울리리라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판결과 함께 취약 아동 보호를 위한 사회적 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탓에 아동학대를 막지 못했다는 국민적 공분도 여전하다.
이에 여야는 아동학대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변인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전히 아동학대 대응책은 미흡한 상황”이라며 “사건이 일어나면 반짝하고 마는 관심의 결과로 아동학대 사건은 잊혀졌고, 가해자에 대한 약소한 처벌, 대응인력의 전문성 부족, 아동학대 예방 대응을 위한 투자 부족의 결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 이상 식어버린 관심으로 아동보호 인프라를 충분히 갖출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 사회가 반복되는 아동학대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중장기 대책 마련을 해야 한다. 민주당은 아동학대 예방과 조기발굴을 위한 관련 법안 및 제도적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그동안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여러 대책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법의 사각지대 속에서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며 “더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근절되지 않는 아동학대 피해사례를 무겁게 인식하며,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전방위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당도 아동학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법 시행 1년이 지났지만 아동학대 범죄에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서 그치지 않고, 아동학대 범죄 근절은 물론 아동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정의당도 그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