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밖서 출산하는 임신부들… ‘익명출산제’ 대안될까

병원 밖서 출산하는 임신부들… ‘익명출산제’ 대안될까

‘보호출산제‧출생통보제 병행도입’ 국회토론회

기사승인 2022-07-05 05:35:02
4일 국회에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 ‘생명을 존중하고 지키는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 병행도입’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은빈 기자

불가피한 사정으로 출산한 아이를 익명으로 맡기는 ‘베이비박스’가 생긴지 13년이 넘었다. 그동안 1935명이 넘는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남겨졌다. 이 가운데 출생등록 사각지대에 놓여 시설에 보내지는 등의 현실을 고려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대안으로 거론된 것이 ‘보호출산제’다. 임신부가 신원을 감추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해 아동의 출생신고 누락 문제와 위기 임신부의 병원 외 출산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4일 국회에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 ‘생명을 존중하고 지키는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 병행도입’ 토론회가 열렸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산모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자신의 신원을 감춘 채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은 “2020년 10월, 베이비박스 앞에 놓인 아기가 저체온증으로 하늘나라에 간 일이 있었다. 그때 너무 죄책감이 들어 다짐을 하고 발의한 게 보호출산법”이라며 “산모가 익명으로 출산하는 길을 열어주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출생을 통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의 건강권, 아기의 생명권 그리고 알 권리의 조화를 도모하는 보호출산제와 아이의 출생이 등록될 권리 보호를 위한 의료기관 출생통보제가 함께 도입돼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며 “보호출산제와 출산통보제 병행 도입이라는 법률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국장은 여성이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사랑공동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보호아기 수 137명 중 14명이 병원 외에서 출산하는 실정이다. 이는 10.2%에 이르는 수치다. 2021년도 113명 중 7명이, 2022년 5월 기준도 55명 중 5명이 병원 외 출산을 선택했다.

이들이 의료기관 밖에서 출산을 선택하는 이유는 출생신고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 국장은 “10대 미혼모나 강간‧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등은 출생신고가 현실적 어려운 사각지대”라며 “10대 출산과 미혼모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출생신고가 어렵거나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는 미혼모가 병원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과 아기의 생명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험한 장소에서 출산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아기를 키울 수 없거나 출생신고 자체가 어려운 경우엔 보호출산법을 통해 출산 전후 과정을 개인의 신상 노출 부담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영유아기 사각지대에 놓인 아기들을 위해 정부에서는 한국형 베이비박스를 합법적으로 허가해 국가 지원을 통해 아기가 생명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은숙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회장은 영유아 유기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인용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사건은 1272건이었다. 특히 2012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이후 최근 몇 년간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생명윤리, 아동의 권리라는 정의를 앞세워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못하고 베이비박스나 입양을 보내야 하는 여성, 특히 미혼모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간과해선 안 된다”면서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상처받은 여성의 숨겨질 권리에도 주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4일 국회에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 ‘생명을 존중하고 지키는 보호출산제와 출생통보제 병행도입’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은빈 기자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신옥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인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익명 출산이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6조 제2항에서는 보호시설장이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보호출산을 원하는 임신부의 시설입소를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입소를 거절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가 무엇인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독일 신뢰출산제도의 경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낙인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사례를 제시했다. 

또한 “출생증서 열람 역시 소재 등이 불확실한 경우가 큰 친부의 동의까지 요구하는 건 과도하며 친모 동의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김현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출생증서 작성 규정을 보면 원칙은 부모의 성명 기재하되 친생부 찾을 수 없는 경우, 친생모의 정보만 작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친생부 찾을 수 없는 상황을 친생모가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해당 법안이 의료인에게 행정상 과도한 부담이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아이가 출생한 의료기관의 장이 아이의 출생사실을 시‧읍‧면의 장에게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것은 의료인에게 행정업무를 대행하려는 것”이라며 “출생통보와 관련된 법률적 책임을 부당하게 부담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산부인과의사회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을 이용해 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산부인과의사가 진료기록부에 출생에 관한 기록을 입력하면 심평원 입원환자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전산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시‧읍‧면 장에게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 지적 등 여러 목소리를 반영해 여성과 아이 모두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최영준 복지부 출산정책과 과장은 “복지부는 법이 통과되면 의료인들에게 행정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심평원 시스템을 이용해 지자체장에게 출생 통보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준비하고 있다. 법률안이 통과돼서 아이들이 등록되고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연구위원은 “법무부는 정부가 발의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신속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개를 원치 않은 출산의 경우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을 기피할 수 있으므로 향후 국회에서 ‘보호출산제’와 균형 있게 논의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