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계 현안 논의가 기약 없이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는 장관 후보자가 두 번이나 낙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으며 수장 공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국회 역시 아직까지 상임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보건의료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방향 키를 잡아야 할 정치권이 결단을 미루면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공회전하고 있다.
6일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이 되도록 복지부 장관 자리는 공석이다. 정호영 후보자에 이어 김승희 후보자까지 논란의 중심에 서며 자진사퇴한 탓이다. 윤 대통령이 첫 복지부 장관 인선을 연달아 실패하며 복지부는 새 정부에서 홀로 ‘장관 없는 부처’로 남았다.
보건‧복지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이 부재함에 따라 복지부는 ‘제1‧2차관’을 중심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 다만 감염병 대응체계 개편, 연금개혁 등 굵직한 과제가 산적해 있어 정책 추진이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원숭이두창 국내 유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재유행 조짐에 정부의 ‘과학방역’도 시험대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방역을 ‘정치 방역’이라며 비판해온 윤 정부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방역 강화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윤 대통령이 취임 전 과학방역으로의 전환을 위해 약속한 실천과제들은 일부 미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코로나19 비상대응 100일 로드맵’ 50일 과제였던 ‘코로나19 긴급치료병상 1400개 이상 추가’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윤 정부 취임 57일째인 5일 기준 확보된 긴급치료병상은 345개에 불과하다. 30일 이내 추진과제였던 ‘1만명 항체 양성률 조사’도 예상보다 늦어져 이달 8일에 착수한다.
윤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국민연금 개혁은 손도 대지 못한 실정이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임기 내에 연금개혁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장관 인선이 늦어지며 답보 상태다. 게다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자리도 비어있어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밖에 물가가 크게 오르며 민생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노인·아동·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도 시급한 과제다. 발달장애인 돌봄 등 장애인 정책, 비대면 진료 논의, 공공의료 확충, 저출생 대책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줄을 서있다.
국회 역시 원 구성 협상을 한 달 넘게 지속한 탓에 의료계 현안 논의가 ‘올스톱’ 됐다. 게다가 여야가 상임위원장 배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구성 시기도 안갯속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6일 기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계류법안은 총 1240건이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 복지위 소관 계류법안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행정안전위원회(1157건), 법제사법위원회(1121건) 등 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이다.
복지위에 계류 중인 1240개 법안 중에는 약사법 개정안, 의료법 개정안,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 개정안, 국립목포대학교 의대 설치에 관한 특별법 등이 심사‧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가 원 구성 협상을 머뭇거리는 사이 보건의료 직역 간 갈등은 폭발하고 있다. 특히 간호법을 놓고 대한간호협회와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대한한의사협회도 독립 한의약법 제정 필요성을 제기하며 의료계 내부 갈등이 커지고 있다.
약사들은 비대면 진료와 관련한 정부와의 협상에 보이콧을 선언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약국이 운영되지 않는 야간 시간이나 공휴일에 약국 앞에 설치된 화상 자판기를 통해 약사와 원격 상담 후 의약품을 살 수 있는 화상 판매기를 규제 특례 대상에 포함한 탓이다. 대한약사회는 강하게 반발하며 보건의료협의체 불참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낙태죄 대체입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 합법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하면서 국내 후속입법 논의의 현주소에도 이목이 집중됐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지 3년이 지났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계류되며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임신중단을 희망하는 여성들은 부작용 우려가 있는 불법 낙태약을 음지에서 복용하는 등 사각지대에 놓여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