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모두 앞에서는 “민생이 최우선”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민생 법안 통과를 위한 원구성 협상마저 난항을 겪으면서 국민적인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안 그래도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14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공전이 한 달을 넘기면서 여야는 더 이상 민생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면서 각 정당 자체적으로 민생 관련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국민의힘은 물가 및 민생안정 특별위원회를 민주당은 경제위기대응특위와 민생우선실천단을 출범시켜 활동 중이다.
국민의힘은 류성걸 의원을 위원장으로 물가 및 민생안정 특별위원회를 꾸렸다. 현재까지 일곱 차례 회의를 진행해 당 차원의 물가안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 집권여당으로서 지위를 가진 만큼 정부 측 관계자들을 불러 물가 및 민생현안을 보고받고 각종 정책 제안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금융당국을 향해 은행별 예대금리차 공시를 현행 분기별에서 월별로 단축하는 방안을 요청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김태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경제위기대응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매주 회의를 열어 윤석열 정부의 경제위기대응을 위한 경제정책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대통령이 경제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는 등 야당이지만 여당이 채우지 못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민생우선실천단을 통해 민생 현장을 돌면서 시급한 민생현안이 무엇인지 직접 보고 들으면서 민생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야 각 특위 활동만으로는 민생현안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원구성 협의을 통해 하반기 국회 상임위가 꾸려지고 산적한 민생현안을 담당하는 상임위에서 검토 후 의결하는 게 정상적인 모습이다. 원구성이 난항을 겪으면서 국회가 멈춰버린 상태로 여야 특위가 획기적이고 좋은 민생정책을 내놓아도 국회가 정상 작동하지 않으면 그냥 공염불일 뿐이다.
특위 활동이 전혀 의미가 없진 않다. 원구성 협상에 따라 상임위가 출범하고 나면 특위를 통해 논의되고 마련된 정책들이 빠르게 당론으로 정해지고, 더불어 여야 합의만 잘 된다면 신속하게 의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가 모두 동의하는 유류세 탄력세율 인하법안 등은 원구성만 되면 사실상 하루 이틀 사이에도 법안 통과가 가능하다.
다만, 여야가 동의한 민생 법안이지만 전개 상황에 따라 서로 생각이 엇갈릴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법안이 그렇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데다가 여야 모두 기본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법안 통과가 미뤄질 수 있다.
재계에서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나 법제화 시에는 국내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며 반대하고 있고 납품단가가 오름에 따라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돼 물가가 상승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르기 때문이다.
이은형 “일하지 않는 국회, 국민들 서운함 느낄 듯”
박상병 “무엇보다 원구성 돼야 민생문제 실마리 풀려”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탄식이 커지는 이유는 또 여야가 앞에서는 민생을 강조하지만 정치적 셈법을 따지면서 원구성 협상을 지연시키고 당내 권력 다툼에 매몰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지난 5일 국회의장단 선출 당시 당장이라도 원구성 협상에 이를 것처럼 모습을 보였으나 일주일이 넘도록 협상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또 민주당은 내달 전당대회에 모든 시선이 쏠려있고, 국민의힘은 초유의 당대표 공백사태로 대행 체제 속에 지도부 총 사퇴, 조기 전당대회 이야기들이 주요 이슈로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속한 원구성이 민생 현안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하면서 여야 구분없이 권력투쟁에 집중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휴먼앤데이터 소장은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원구성이 된다면 국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주고, 국민들이 경제위기에 느끼는 불안심리를 해소시켜줄 수 있다”며 “유류세 인하 법안 등 양당 모두 이견이 없는 시급한 민생 법안은 빠르게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정상 가동된다고 해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뾰족한 수가 없고, 국회가 일을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국민입장에서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만큼 조속한 원구성 협상이 중요하다”며 “국민들은 원구성 협상이 지연되면 될수록 국회가 일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 궁리만 한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본지와 통화에서 “여야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에 대해서는 원구성이 되자마자 통과되겠지만, 민생현안이라고 하더라도 양당의 의견이 다를 수 있는 것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며 “일단 원구성이 되야 산적한 민생문제들이 풀릴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여야간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야 할 거 없이 다 전당대회나 차기 지도부 선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최근 비춰지면서 민생은 다소 형식적으로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말로만 민생할 것이 아니라 국회를 정상화시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