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택배노동자들이 쿠팡 물량 이탈로 조합원들이 생계 위협에 처했다며 사측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노조는 5개월이 지나도록 본사가 제대로 된 대책 없이 시간 끌기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택배노동자와 본사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총파업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실제 총파업까지 돌입할 경우 배송 차질 등 소비자들의 불편도 가중될 전망이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조는 25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소 생계 유지를 위한 특별수수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총력 투쟁에 나설 것을 선포했다. 조합원들은 오는 29일까지 사측이 별도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결의대회를 열고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택배노조는 “쿠팡의 물류 이탈로 한진 택배노동자들은 주 6일, 주 60시간을 일하고도 300만원도 채 벌지 못하고 있다”면서 “생계 위협에 처한 한진 택배노동자들은 타 택배사로 이직하거나 새벽배송 투잡으로 내몰리는 등 고용 불안과 과로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노조는 한진택배의 영업전략 실패가 쿠팡의 물류 이탈을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쿠팡이 자체 배송 인프라가 구축되면 언제라도 한진택배에 위탁한 물량을 회수할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후 물류 이탈 사태가 벌어진 뒤에도 한진은 “영업으로 물량을 채우겠다”면서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의 대책만을 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진택배 전체 물량 가운데 쿠팡이 위탁한 물량은 약 15%, 중소도시 등은 40~70%인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쿠팡은 올해 초 700만개 물량을 한진택배에 위탁했으나 대부분을 자체 배송하겠다고 정했고, 지난 4월부터 360만개 물량이 이탈됐다. 한진택배 노동자 8000명 가운데 65개 지역에서 1000여명이 생계위협 피해를 입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물류 이탈로 인한 피해 수준은 택배노동자가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사실상 수수료가 반토막이 났고, 대리점수수료·부가세·기름값·차량유지비용 등 각종 부담까지 떠안으면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수준에도 못미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택배노조는 4월부터 사태해결을 위한 대화를 해 왔다. 5개월이 지나 택배노동자들이 생계의 벼랑 끝에 몰린 지금 한진은 여전히 물량 회복 이후 나중에 논의해보자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은 결국 한진 본사 책임이다. 본사는 생계보장 특별수수료 지급을 비롯한 실질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찬희 택배노조 한진본부장은 “그동안 이 문제로 본사와 7번의 교섭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본사는 시간끌기와 말바꾸기로 일관했고 결론은 생존권 보장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목표는 파업투쟁 자체가 아니라 한진본사가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국민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원만한 해결을 만들고자 노력하되 파업이 불가피한 시기와 파업의 수위를 판단해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은 한진본사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오는 29일 한진 본부 확대간부결의대회에 이어 농성투쟁에 돌입한다고 예고한 상태다. 생물·이형 배송거부, 총파업 투쟁까지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
거제에서 10년째 택배 일을 하고 있다는 김형주 한진거제지회 지회장은 “현재 배송 수수료가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오늘이 월급날인데 부가세를 제외하면 190만원 가량을 받는다”면서 “택배를 하며 땀흘려 버는 돈이 가장 소중하고 값진 돈이라 생각해 택배업을 계속해 왔는데 당장 다음달에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회견이 끝나고 내려가면 대출을 알아봐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데 돌아오는 건 은행 가서 돈을 빌려야 한다는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출도 못 받고 파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쿠팡 물량 회수가 예정됐을 때부터 사측과 논의하자고 얘기해 왔다. 하지만 대책은 내놓지 않았고 택배노동자 수입만 50% 전후 삭감이 됐다”면서 “총파업 이전까지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설 예정이다. 지혜를 모으는 자리를 마련할 것을 사측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태흥 진보당 공동대표는 “쿠팡이 공격적으로 택배업에 진출함에 따라 경쟁은 심화되고, 그 피해는 노동자들이 직접 입게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면서 “노동자들에겐 물량이 곧 수입인 만큼 적정 근로시간과 안정적인 소득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될 때”라고 강조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도 “추석을 앞두고 택배노동자들이 생계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사측이 나서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진택배 관계자는 “택배현장의 안정화와 원활한 노사관계 확립, 쿠팡물량 대책수립 등에 대해 6차례 걸쳐 노사가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자동화 시설 투자 확대 등 택배사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물량 증대와 택배기사의 안전 및 근로환경 개선, 수입 증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김한나 기자 hanna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