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사 부담에 대한 남녀의 인식은 높아진 반면 실제 가사분담은 여전히 여성에게 과중돼 변화 속도는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 내 젠더 문제는 해묵은 갈등이지만 해결은 제자리걸음이다. 가사와 돌봄에 대한 책임과 부담감에 대한 아내의 고민 못지 않게 남편의 고충도 적지 않은 이유에서다.
7일 쿠키뉴스가 만난 기혼 남성들은 한목소리로 회사 업무 강도, 생계부양자 역할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출퇴근 거리 등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가사분담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은 크게 높아졌지만 제도와 사회적 통념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패션·유통업계 종사자이자 남편 외벌이 부부인 박은국(38)씨는 “매일 오후 9시나 돼야 퇴근한다. 주중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모습만 볼 수 있으니 육아에 대한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세 아이를 둔 직장인 김장훈(40)씨는 “아내와 상의 끝에 일과 가사·돌봄 업무의 비중을 급여 기준으로 분담했다”며 “야근이 많은 저와 달리 아내는 근무 시간을 조정해 육아를 사실상 도맡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부부가 각각 일과 가사·육아 업무에 우선 순위를 세웠다는 분담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여성(1만5804원) 임금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2만2637원)의 69.8% 수준이다.
실제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 보통 결혼과 출산율이 높은 시기인 30대의 일 의무 시간(구직활동포함) 중 남성은 평균 5시간41분인 반면, 여성은 2시간49분이다. 가사노동 시간의 경우 30대 남성은 1시간7분이지만 여성은 4시간20분으로 큰 차이를 보였다. 40~60대 역시 남성은 일, 여성은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또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같은 것도 있지만 사실 중소기업에서는 남성이 사용하기 여전히 어려운 분위기라”며 “출산 장려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춰져 있어도 사용할 수 없으면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의 ‘2022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한 근로자는 1만6692명으로 여성이 대부분(90.2%, 1만5000명)을 차지했다.
최근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공무원 윤정복(38)씨는 “육아휴직 중 집안일도 하고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면서도 “제 업무를 다른 동료들이 분담해야 해서 눈치가 보였고, 복직 후 격무 부서로 배치될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제 비용과 출퇴근 시간과 거리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금융권에서 근무하는 최성국(39)씨는 “직장은 서울이지만 집값이 너무 비싸 점점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면서 피로감이 크고 주말까지 피로가 남아있다. 이동 시간이 길어진 만큼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할 시간이 부족하다. 직주근접과 교통 문제만 해결돼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자녀를 키우는 맞벌이 가정의 이유철(45)씨도 “아내의 직장에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해 살다보니 상대적으로 (퇴근이 빨라)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더 하게 되는 구조”라고 했다.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사회적 인식과 가정에서의 느끼는 소외감 등도 남편의 가사·돌봄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씨는 “학교, 학원 등에 부모 연락처로 아빠 휴대폰 번호를 알려줘도 결국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 엄마한테만 연락한다”며 “아이들도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육아를 도와주려해도) 아이들이 엄마한테만 간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젊은 기혼 남성들은 남녀 간 달라진 역할 분담에 혼란스러운 모습도 보였다. 남성은 직장, 여성은 가정이라는 성별 역할 분담이 확실한 부모 세대와 달리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맞벌이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남성만 일하는 외벌이에도 집안일을 같이 해야 좋은 남편”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씨는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남편이 주말 가사와 육아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는데 남편의 삶 역시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는 분위기는 많지 않은 것 같다”라며 “요즘 남편들은 가정 내에서도 성평등해야 한다는데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만큼 ‘남편이 더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