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통신 44] 아이의 교우관계는 어디까지 부모가 신경 써야 할까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으로부터 ‘아이의 교우 관계는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일부 엄마들은 아이가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동네서 (여러 기준으로) 선별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유도하기도 하더군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부모 직업과 학교 생활 평판이 주판알이 돼 다른 아이를 평가하는 부모들의 손가락 위에 오르는 모습을 몇 번 보면서 자리를 피한 적이 많습니다. 왜 아이들은 성향이 서로 다른데 부모가 원하는 친구를 붙여주려 하는 걸까, 하는 고민도 했고요.
주변 엄마들은 ‘그래도 엄마 말을 들을 때’ 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고민이 생깁니다. 자아 발달이 시작되고 소위 ‘부모 말은 잘 듣지 않는’ 사춘기 시기가 됐을 때 아이의 교우관계에 대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이런 고민이 최근 딜레마에 빠뜨렸습니다. 요즘 10대는 카카오톡을 가족톡방, 반톡방, 학원톡방 등 단체 톡방으로 쓰고 친한 친구들과의 대화는 주로 페이스북메신저(페메)나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DM)를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익명성을 앞세운 에스크, 디스코드 등은 두말 할 필요가 없고요. 부모가 신경써야 할 내 아이의 친구 범위가 전세계로 넓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안 하는 친구들을 찾기 힘들 정도라고 하니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에게 ‘계정 삭제’를 요구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 것이라고 반발할 게 뻔합니다.
그렇다고 SNS 메신저를 사용하게 두기엔 걱정이 큽니다. 우연히 에스크·디스코드 등에서 본 채팅방 속 아이의 랜선 친구들이 입에도 담기 힘든 거친 욕설과 성희롱 발언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며 낄낄댔습니다. 더 충격을 받게 한 건 그런 대화들을 별일 아닌 10대 문화인 것처럼 인식하고 두둔하는 아이의 행동이었습니다.
제2의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일명 엘 사건 역시 SNS 메신저로 미끼 제공을 하며 시작됐습니다. 엘 사건 가해자는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사진이 SNS에 퍼지고 있다”고 알려주며 n번방을 추적한 활동가 ‘추적단 불꽃’인 양 행세하며 접근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폐쇄성이 높은 SNS 메신저가 사이버불링(집단 따돌림)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도 우려됩니다. 익명 계정을 통해 서로 질문을 하거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에스크는 지난해 푸른나무재단이 공개한 ‘2021년 학교폭력사이버폭력 실태조사 및 대책 발표’에서 카카오톡(18.7%) 페이스북(17.6%) 틱톡(9.5%)에 이어 사이버폭력이 일어난 애플리케이션(8.9%)으로 꼽혔습니다.
실제 경기도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의 등교가 원활하지 않고 온라인 수업을 받으면서 대인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아 왕따 등 학교폭력이 늘었다”고 우려했습니다.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교육공무원 A씨는 “SNS로 인한 학교폭력 사례가 상당히 많다”고 했고요. 아이를 둔 부모 입장에선 무시하기 힘든 말이다보니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맘카페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슷한 고민이 쏟아집니다. “요즘 10대는 페북이나 인스타그램 아이디만 묻고 휴대폰 번호는 찐친일 경우만 알려준다더라(pjs***)” “디스코드 같은데서 학교나 학원 친구가 아닌 모르는 사람들과 사귀는 게 너무 걱정된다(say***)” “중학생 자녀가 페메로 남자친구 만들고 모르는 애들이랑 톡하고 대화내용이 다 욕이다. 못하게 하니 계속 거짓말을 한다(xna***)” 등의 글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고민 끝에 SNS를 당분간 금지하고 디지털 기기와 거리두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의 사회적 관계에 손을 댄 것입니다.
최근 읽은 ‘내 새끼 때문에 고민입니다만,’라는 책의 저자인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이 책에서 부모의 ‘허락’을 강조했습니다. 또래집단과 애착 관계가 두드러지는 사춘기 시기가 되면 아이들의 요구사항이 많아 지는데 이때 자칫 부모의 허락으로 아이가 통제를 벗어났다는 짜릿함을 경험하면 또 다른 허락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금시간이 계속 늘려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SNS 메신저를 허락하지 않으면 아이가 ‘상심’할 것이란 생각에 쿨한 척 대했던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부모의 허락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느껴지게 했던 것 같아 반성했습니다.
이 책에서 서 교수는 “허락할 때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 바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약속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며 “허락을 거절해야 한다면 자녀의 감정이 다치지 않도록 거절한 이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다정한 설득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크게 반발하진 않았지만 표정에서 불만을 지우지는 못했습니다. 왜 SNS메신저 사용을 반대하는지, 어떤 책임이 필요한지에 대해 대화하고 운동이나 나들이 등으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같은 노력이 속상한 아이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