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비대위원장은 최근 시점이 아닌 비대위 출범 전 주고받은 문자라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의도적 노출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과거에도 문자를 노출한 의원들은 모두 우연 또는 실수임을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의도적 노출이라고 사실상 판단한 사례도 줄곧 있었다.
21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9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정 비대위원장의 문자 공개 사건은 단순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다. 5선을 지낸 정진석 비대위원장이기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방심하다가 우연히 의도치 않게 노출됐을 거란 게 중론이다.
한 중진 의원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5선을 지낸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자신의 뒤편에서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을 거란 것은 분명히 인지했을 것이나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메시지를 보다가 노출했을 것”이라며 “당을 봉합하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단순 해프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초선 의원들도 뒤편에서 휴대폰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며 “그렇지만 긴 시간 있다 보면 알면서도 휴대폰을 보는 경우가 생긴다. 이번 정진석 비대위원장 문자 노출 사건도 방심하다가 우연히 보여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비대위원장이 문자를 노출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전혀 없는 반면 발생한 논란은 크다면서 굳이 스스로 문자를 노출할 리가 만무하다고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의도 가능성은 일축했다.
박상평 정치평론가는 쿠키뉴스와 인터뷰에서 “야당에서조차 말해도 문제가 생길 정도의 강도 높은 발언을 이 대표가 내놨고, 이에 대해 당내에서 이미 이 전 대표에 대한 제명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가만히 있어도 이 전 대표의 제명이 진행될 텐데 굳이 문자를 억지로 노출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명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징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기 위했다기보다는 옛날 걸 확인하다가 우연히 실수로 노출된 걸로 보는 게 더 맞다”고 부연했다.
그렇다고 과거 정치권에서 언론을 통해 메시지를 노출한 모든 경우가 단순 해프닝인 것만은 아니다. 당사자들은 우연 또는 실수라고 항상 해명하지만, 사실상 언론에 관련 내용을 흘려서 언론 플레이를 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잘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은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국민의당 원내대표이던 지난 2016년 11월 본회의장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의 문자 메시지를 언론에 노출시켰다.
이정현 대표는 문자 메시지에 “죽을 때까지 존경하고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라고 적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적 의도가 담긴 행동으로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야권의 요구에 수용하지 않은 이정현 대표에 대한 항의의 표현이자 ‘망신주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언론에 메시지 흘리기 고수로 정평이 나 있다. 2015년 1월 본회의장에서 맨 뒷자리에 앉아 자신의 수첩을 언론에 보이면서 일명 수첩 파동을 일으킨 바 있다. 아홉 달 뒤인 10월에는 ‘비박계 쇄신파를 움직여야 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언론에 노출시켰다.
당시는 공천권을 두고 청와대와 김 전 대표 사이 갈등이 잠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였는데 비박계 세 결집 등 향후 전략을 담고 있는 글을 노출해 비박 세력을 결집하고, 친박계를 압박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정진석 비대위원장의 문자 노출 사건은 정치적인 의도라고 보기는 무리다. 단순 실수일 것”이라며 “그렇지만 과거 일부 사례에서는 본인 입으로 직접 알리기 힘든 내용을 언론에 흘리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경우들도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