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그동안 0.25%p씩 금리를 점진적으로 올리는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적 정책방향)의 수정을 예고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75%p 올리는 3번째 자이언트스텝에 나선 결과다. 오는 10월 열리는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0%p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이 커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한 시장 기대가 바뀌었다”며 “이로 인해 물가 등에 어떤 영향을 줄지 검토해서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동안 시장에 기준금리를 0.25%p씩 올리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해 왔다. 그는 지난 7월 금통위 직후 “국내 물가흐름이 현재 전망하고 있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당분간 금리를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8월에는 “당분간 0.25%p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기조”라고 포워드 가이던스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변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FOMC 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0.75%p 올린다고 22일 새벽 밝혔다. 미 기준금리는 이번 인상으로 2.25%~2.50%에서 3%~3.25%로 올라갔다. 또한 이번 인상폭 0.75%p 만큼 한미간 금리차이가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높게 균형이 잡힌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외국인 투자자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수익을 찾아 이동한다. 따라서 한국의 기준금리 보다 미국의 금리가 높으면 외국인 투자자금, 특히 달러가 국내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미 기준금리 인상의 영향은 이미 시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22일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1400원을 돌파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3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며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는 부작용도 있다.
환율 상승과 함께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9일까지 코스피에서 1조5129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 15일 외국인 비중은 30.36%로, 2009년 7월 24일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달 공개된 8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국제수지 관점에서 미국과의 과도한 금리차가 지속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향후 금리차가 확대되면서 역전기간이 길어지거나 주요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확산될 경우 국내에서도 일부 외국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한미 금리 차 자체가 통화정책의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한미 금리 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건 좋지 않다. 원화 절하(환율 상승)의 간접적인 효과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에 한은의 포워드 가이던스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시장은 한국의 최종 기준금리를 3.5%까지도 고려하고 있는데, 미국의 최종 기준금리가 4% 중반을 넘어 5%까지 상향될 경우 한·미 금리차는 급격히 확대된다”며 “한은이 금리 인상폭 확대를 통해 원화 약세를 대응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이 총재가 결국 포워드 가이던스 수정을 예고하면서 시장은 오는 10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0.50%p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삼성증권은 “현시점에서 한국의 기준금리(현재 연 2.50%) 전망치 상단을 연 3.0%로 제시하는 것은 희망고문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기준금리 전망치 상단을 3.25%로 수정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