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한 뒤 처음으로 진행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대체로 여·야간 기싸움이 일어나거나 막말이나 고성 등으로 얼룩지는 사건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7일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을 상대로 진행한 국감은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번 한국은행 국정감사의 핵심 키워드는 고금리·고환율·고물가 ‘삼중고’와 ‘가계부채’로 요약할 수 있다. 다만 국감에 첫 데뷔전을 치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고물가’ 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기조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 “당분간 소비자물가 5~6%대 지속…금리인상 기조 이어가야”
이창용 총재는 기재위 국감에서 인사말을 통해 “지난주 긴급 현안보고를 드린 후, 파운드화 가치가 37년래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고 위안화 약세폭도 확대되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더욱 심화됐다”며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을 넘어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상승한 가운데 국고채 금리가 이례적으로 큰 폭 등락하는 등 높은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국내 경제상황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내 물가는 개인서비스물가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크게 상회하는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5~6%대의 오름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높은 수준의 환율이 추가적인 물가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이 총재는 고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잡고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총 일곱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2.0%p 인상한 데 이어, 앞으로도 고물가 상황의 고착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향후 기준금리 인상의 폭과 시기는 주요국 통화정책 기조,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외여건의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 흐름, 금융·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같은 고물가 지속건에 대해서 기재부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감장에 ‘배추’ 한 포기를 책상에 두고 “배추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샀는데 예전에 2000~3000원이던 게 9000원까지 올라서 걱정이 많다”며 “연 2회 정도 형식적으로 물가점검회의를 하는데 물가 근심이 많은 상황에서 연 2회 갖고 되겠는가. 물가 안정을 위해선 환율 안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물가가 오르는 것도 문제지만 높은 수준의 물가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정부는 경기부양을 생각하고, 한은은 복합적 상황에서 위기에 대응해야야 하므로 쉽지 않은 상황이나 고금리가 지속되면 우리나라에도 많은 문제가 발행해 대처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한은의 기본적인 입장은 5% 이상 고물가가 유지되는 한 무엇보다도 물가 안정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물가상승률이 5% 이상이면 금리 인상 기조를 가져가서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이하로 떨어지면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최적의 정책 조합을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환율에 따른 대처방안·한·미 통화스와프도 집중 논의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가면서 하락세를 보이지 않는 고환율 문제도 이날 국감장에서 다뤄졌다. 기재위 위원들은 외환시장 안정 방안을 비롯해 한미 통화스와프 추진상황, 한미 금리차 확대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 금리인상을 따라가려면 우리나라의 금리 인상도 불가피한데, 금리 역전 상태를 유지할 순 없다”며 “문제는 오늘 경상수지 적자가 발표된데다 중국과의 교역문제가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어 결국 국내 문제가 대외적 변수와 결합할 때는 환율 방어, 외환 유동성 방어에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스와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 의원은 “(국회에는) 통화스와프의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말하면서 심리가 안정되는 정도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는데 경제는 심리가 아닌가. 심리 때문에 시장이 움직이는 것 아닌가”라며 “2008년 리먼사태 때 우리나라가 어려웠는데 통화스와프 체결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잠재워 저희가 선방한 경험이 있지 않나. 환율을 안정시키려면 통화스와프 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총재는 현 시점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미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환율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킨다고 보기 어렵다”며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달러 유동성이 위축되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연준이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어느 상태인지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연준 결정에 관여하는 것이라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또한 이 총재는 “정말로 IMF 내에서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짜로 없다”며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 수치가 안정적인 상황임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IMF가 권고하는 적절한 외환보유고 기준치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수준은 어떤 상태인가”라는 질의에 대해 “IMF는 수출액과 시중통화량, 유동외채, 외국인 증권 및 기타 투자금 잔액 등을 감안해 적정외환보유액 평가 지수를 산출한다”며, “해당 비율이 100~150% 범위에 있으면 적정한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기준 99%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