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아동·청소년 인권 유린이 자행된 경기 선감학원에 대해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기도는 김동연 지사의 공식 사과와 함께 피해자 지원대책을 내놨다.
진실화해위는 20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과 관련해 “암매장 유해를 확인하고, 강제구금과 강제노동, 폭력, 사망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폐원 40년 만에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이다.
또한 진실 규명을 신청한 피해자 167명에 대해 피수용 아동임이 확인됐다는 결정문을 내놨다.
선감학원서 자행된 인권유린…현재까지 아동 사망자 29명 확인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서 운영됐다. 부랑아 교화를 명분으로 8~18세 아동·청소년을 강제 입소시켜 노역·폭행·학대·고문 등 인권유린을 자행한 수용소다. 1946년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돼 1982년 폐쇄될 때까지 인권침해 행위가 지속된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선감학원 개원부터 폐원까지 수용된 아동의 수는 5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 4689건의 원아대장 중 입·퇴소 연도 및 생년이 확인된 4674건의 원아대장 분석에 따르면 수용인원은 7~12세가 41.9%, 13~17세가 47.8%로 나타났다. 수용아동의 본적지는 경기도가 30.1%로 가장 많았고 서울 10.8%, 전남 8.2%, 충남 7.6% 등의 순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9월 26일부터 닷새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에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의 봉분 5기를 시굴한 결과 치아 68개와 유품인 단추 6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시굴용역을 담당한 선사문화연구원에 따르면 확인된 암매장 유해는 모두 15~18세 남성으로 추정된다. 인근에는 140~150기의 봉분이 있다.
선감학원 원아대장과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통해 확인된 아동 사망자는 29명이다. 사망 사유별로는 익사 14명, 미기재 12명, 병사 3명으로 나타났다.
원아대장 4689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퇴소 사유 가운데 탈출은 824명으로 무려 17.8%에 달했다. 진실화해위는 “굶주림과 폭력, 강제노동 등에 시달리던 원생 중 상당수가 섬에서 탈출을 시도했지만 선감도 주변 서해 갯벌 물살이 센데다 수심이 깊어 상당수 원생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선감학원에 수용된 아동들은 강제구금된 채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과밀수용, 부실 급식 등 다양한 인권침해를 당했던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는 “원생들은 밭농사, 논농사, 양잠, 축산, 염전 등 노역에 투입됐다. 아무런 보수 없이 아동으로서 견뎌내기 힘든 고강도 강제노역에 동원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폭행은 기숙사의 사장, 반장은 물론 공무원들에 의해서도 자행됐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진실화해위는 전했다.
수용자 퇴소 후에도 트라우마…진실화해위 “국가·경기도 책임”
선감학원의 피해자들은 퇴소 후에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 침해사건 신청인 중 99명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절반 이상인 51%가 자살시도를 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수면장애 증상 등에 대한 설문에서는 불면증 35%, 악몽 30%, 신체적 통증 21% 등 86%가 고통을 호소했다.
진실화해위는 “무리한 부랑아 대책을 수립해 무분별한 단속정책을 주도한 국가, 구체적으로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와 부랑아 단속 주체인 경찰, 선감학원을 운영한 경기도 등은 이러한 총체적 인권유린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와 경기도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국가가 피해자와 유가족의 피해회복을 위해 관련 특별법을 제정 등 적절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와 함께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 등 조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지원책 내놓은 경기도…김동연 “깊은 사과와 위로”
김동연 경기도 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찾아 유가족과 피해자들에 깊은 사과와 위로를 표했다.
김 지사는 “선감학원은 40년 전 문을 닫고 사라졌지만 관선 도지사 시대에 벌어진 심각한 국가 폭력”이라며 “크나큰 고통을 겪으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께 경기도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분들의 넋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책임 있는 자세로 피해자분들의 상처와 명예 회복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피해자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책에는 △피해자 생활 지원 △피해자 트라우마 해소 및 의료서비스 지원 △희생자 추모 및 기념사업 추진 등이 담겼다.
도는 우선 피해자 생활 지원을 위해 생활안정지원금 지급을 검토하고, 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해 피해지원 기능을 체계화할 계획이다. 또 트라우마 해소 프로그램을 운영해 피해자의 일상 회복과 정신건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의료서비스 지원을 내실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선감학원 묘역을 정비하고 추모비를 설치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공간을 조성하고, 추모문화제를 확대 운영해 인권 의식 향상의 기회로 삼을 방침이다. 이와 함께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피해 배·보상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앞서 경기도는 지난 2016년 ‘경기도 선감학원사건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 이후 매년 선감학원 추모문화제 지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2020년부터는 피해자신고센터를 운영해 지속적으로 사례를 접수하는 한편 피해자 상담과 치료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도에 따르면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에서 진료비와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100% 지원해 지난 9월 기준 378명에게 734건을 지원했다.
김 지사는 “선감학원은 국가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침해 사건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며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가 아동 인권의 현실을 다시금 돌아보고 대한민국 전체 아동 인권 수준을 선진화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