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비서 A씨가 주고받은 문자가 공개된 것을 두고 여성단체가 “피해자 공격을 위해 왜곡, 짜깁기 유포하고 있는 상황이 참담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박 전 시장 유족 측 법률 대리를 맡았던 정철승 변호사도 반박하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는 20일 이같은 입장을 냈다.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이었던 김재련 변호사도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해당 입장문을 공유했다.
앞서 박 전 시장과 A씨가 나눈 텔레그램 대화 내용 일부가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박 전 시장 유족 측 법률 대리를 맡았던 정철승 변호사는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포렌식으로 복구된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메시지에는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꿈에서는 돼요” “꿈에서는 마음대로ㅋㅋㅋ”라고 보낸 내용이 담겼다. 이에 박 전 시장은 “빨리 시집가야지” “내가 아빠같다”고 말했다.
단체들은 박 전 시장과 A씨가 주고받은 문자 논란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삭제한 채 성폭력 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포렌식 결과는 성희롱 결정을 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 과정에서도 이미 검토된 것”이라며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폰을 포렌식한 결과로 2020년 7월8일 경찰 고소장 접수 당시 피해자가 제출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들은 ‘사랑해요’라는 표현에 대해 “정치인 박원순의 활동에서 지지자와 캠페인 차원에서 통용되던 표현”이라며 “피해자가 동료들, 상급자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면 상급자도 피해자에게 사랑해라고 하고, 피해자도 이들에게 사랑해요를 기재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자료 또한 경찰과 인권위에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꿈에서 만나요’에 대해선 “직장의 수장인 박 전 서울시장의 연락이 밤늦게 이뤄지는 것이 반복됐던 시점에서 피해자가 이를 중단하고 회피하고자 할 때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 변호사의 메시지 유포를 특히 비판했다. 단체는 “정 변호사는 피해자가 더 큰 성폭력 피해를 막고자 가해자를 달래거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 등을 맥락 없이 유포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박 전 시장의 휴대폰 포렌식을 촉구하면서 피해자를 공격·모욕하는 행위를 멈추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정 변호사는 SNS에 “인권위가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받아서 아무런 편집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공개했는데도 김 변호사 측과 성폭력상담소는 편집 운운하는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가 막힌 말장난은 고소인은 박 시장 뿐만 아니라 동료, 상급자 등에게도 수시로 사랑해요라고 말했다는 주장이다. 고소인은 동료, 상급자에게 수시로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라고 말했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전 시장 성희롱 사건을 다룬 ‘비극의 탄생’의 저자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도 SNS에 글을 올려 여성단체의 입장 내용을 조목조목 따졌다. 손 기자는 “인권위가 이미 검토했냐 여부가 아니라 사람들은 왜 이걸 지금 알게 됐냐는 것이다”라며 “여성단체들은 이제와서 ‘사랑해요’ 등에 대해 절묘한 해명들을 하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왜 이들이 이 사실을 끝끝내 은폐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삭제한 채 성폭력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시장실 동료 중에 ‘너네집 갈까’ ‘냄새 좋아 킁킁’이라는 시장 문자를 본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당사자들도 시장이 말한 맥락을 정확히 모른 체 한 증언이라는 것. 인권위는 이것들에 대해 성희롱 판정을 내렸고 유족들이 판단 근거를 알려달라고 하자 ‘2차 가해’라고 했다”라며 “가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삭제한 채 성폭력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