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지역 시민단체 “최초 춘향영정 복위 ‘춘향제’ 정통성 회복” 촉구

남원지역 시민단체 “최초 춘향영정 복위 ‘춘향제’ 정통성 회복” 촉구

“친일화가가 그린 춘향영정 몰아낸 자리에 최초 춘향영정 복위 합당”

기사승인 2022-10-26 13:34:53
최초 춘향영정 복위 시민연대가 26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최초 춘향영정 복위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전북 남원의 최초 춘향영정 복위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가 역사적 정통성을 간직한 최초 춘향영정을 사당에 봉안하고 ‘춘향제’의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연대는 26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경식 남원시장이 최초 춘향영정 복위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에도 문화원에 영정문제 해결을 위탁, 새로 그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역사적 정통성을 간직한 최초 춘향영정 복위를 촉구했다. 

시민연대에 따르면 춘향제는 1931년 일제에 대항해 민족의 얼과 문화를 지키고자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현대 민족축제로 남원예기권번(전북에서 유일하게 일본말을 안 한 권번) 대표 최봉선, 독립운동단체 신간회(이현순), 청년동맹(정광옥) 간부들과 남원 주민들이 함께한 민족문화운동으로 기록됐다. 

시민연대는 “최초 춘향영정은 춘향제를 기획한 최봉선 남원예기권본 대표가 진주의 화가에게 의뢰해 그린 영정으로 한국전쟁 중에도 지켜냈으나,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내각수반이 된 송요찬 주도로 친일화가로 알려진 김은호가 다시 그린 가부키 양식의 춘향그림을 기증해 최초영정 앞에 이중으로 봉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분노한 최봉선을 중심으로 1965년 사당에서 가부키 양식의 영정을 몰아내고 최초영정을 복위시켰지만, 최봉선 사후에 1974년 남원시는 최초영정을 내려버리고 사당도 없애버렸다고 시민연대는 설명했다.

남원시는 1977년 현재 위치의 사당에 가부키 양식의 춘향 그림을 안치하고 제향을 지내기 시작했다.

사당 마당에 있던 무궁화 한 그루가 남아 있었으나 작년에 마지막 꽃을 피우고 고사해 베어냈고, 남원역사연구회는 우리무궁화연구소와 함께 이 나무의 후계목을 키우고 있다. 

최초 춘향영정은 박물관 수장고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다가 지난 2020년 9월 시민들의 노력으로 부활했다.

시민연대는 “남원시민들은 3년 동안 최초 영정 봉안 운동을 이어왔는데, 남원시는 최초영정이 ‘춘향전 속의 춘향이와 이미지가 다르다’는 일부 단체의 의견에 맞춰 새로 그리려는 작업만 꾸준히 이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최초 춘향영정은 고전 미인상으로 ‘결혼한 어사 부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최봉선에 의해 전해졌다”며, “춘향 영정을 새로 그릴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최초 춘향영정을 복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남원=김영재 기자 jump0220@kukinews.com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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