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원 주택을 보유한 이들의 대출 이자는 세금으로 낮춰주면서 왜 전세로 거주하는 세입자의 이자는 지원해주지 않죠. 집주인 보다는 세입자에 대한 지원이 더 절실한 것 아닌가요” (종로구 거주 34세 A씨)
안심전환대출을 두고 전세입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한 집주인들의 대출 이자를 깎아주면서 전세대출자에 대한 이자지원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고 판단해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부터 안심전환대출의 주택가격 요건이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완화될 전망이다. 당정은 지난 7일 열린 ‘민생금융점검 당정협의회’에서 주택가격 요건을 내년부터 9억원으로 낮추는데 합의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내년부터 안심전환대출 한도를 5억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예산안 심사 방향도 발표했다.
안심전환대출은 변동금리 대출을 3%대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정책금융상품이다. 당초 안심전환대출은 지난 9월 금리 인상기 서민·취약계층의 금융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택가격 4억원, 부부합산 소득 7000만원의 요건을 두고 25조원 한도로 출시됐다.
하지만 1차 신청이 마감된 지난달 31일까지 접수된 신청건은 총 3조9897억원(3만9026건)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공급한도의 약 16%에 불과한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안심전환대출의 흥행 실패 요인이 너무 높은 자격 요건인 것으로 보고 2차 신청 접수부터는 주택가격 6억원, 부부합산 소득 1억원으로 자격 요건을 낮췄다. 여기에 여당이 9억원까지 자격 요건을 더 낮춰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내년부터 이를 적용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전세대출 이용자의 불만은 안심전환대출의 지원 요건이 점차 낮아지면서 더 이상 서민이나 취약계층만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나온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10월 서울 강북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9억9576만원으로, 안심전환대출의 자격 요건이 9억원으로 올라가면 강북 아파트 절반 정도가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반면 금융당국은 안심전환대출 출시부터 전세대출을 지원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안심전환대출은 주택금융공사가 은행 채권을 매입해 주택저당증권(MBS)을 발행하면서 정부 지원을 보태 금리를 낮춰주는 구조다. 전세대출은 실질적으로 담보가 없고 만기가 짧아 MBS 발행이 어려워 대상에서 처음부터 제외됐다.
또한 당국은 전세자금 대출의 보증한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세대출 이자 문제에 대응하면서 기존 대출 이용자들은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는 사이 전세대출을 주로 이용하는 2030세대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특히 소득이나 자산 수준이 높지 않은 2030세대의 채무불이행이 늘어나고 있다. 주금공이 7월 말 기준 대위변제한 전세자금 대출액은 총 1727억원, 이 가운데 53.4%인 922억원이 2030 청년층에서 발생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안심전환대출의 주택가격을 9억원으로 완화하는데 제기된 반대 여론에 지난 9일 “형평성만을 따지면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적어도 의식주의 문제, 특히 주거 안정과 관련돼서는 정부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9억원이라는 기준이 문제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국민들의 의견을 듣고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하겠다”고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한편 금융권 일각에서는 전세대출에 대한 이자 지원 등이 부동산 시장의 왜곡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대출에 대한 이자지원은 결국 그 혜택이 전세가 상승으로 집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