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레고랜드 사태에 더해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조기상환권) 미 이행 논란 등 연이어 채권시장에 악재가 발생하면서 한국의 금융에 대한 신용 불신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채권형 펀드에서 자금 유출이 이어지는 등 악재가 지속되면서 이같은 한국 채권시장 불안정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지난 7일 “2017년 11월 발행한 5억 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흥국생명은 당초 3억달러(약 42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차환 발행해 조기상환 자금을 마련하려 시도했으나 시장 여건 악화로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었다. 이에 따라 흥국생명은 지난 1일 자금 조달에 실패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흥국생명 콜옵션 미 이행 이슈가 왜 문제되는지 알려면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신종자본증권은 금융사들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규제를 맞추기 위해 발행하는 이전까지 신종자본증권은 재무제표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기업과 금융사들이 자본을 조달할 때 발행해왔다.
또한 신종자본증권은 주식처럼 만기가 없거나 상환이 매우 길다(20년)는 특징이 있다. 다만 5년마다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금융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어 채권가격 또한 실질 만기(20년)가 아닌 행사일을 기준으로 형성된다. 따라서 투자자에겐 콜옵션 행사(5년)가 만기로 인식된다.
문제는 상환단계에서 시작했다.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기업들이 조기상환할 때 다른 신종자본증권이나 금리 부담이 적은 회사채 등을 발행해 상환하는데, 최근 채권시장이 급격한 경색이 이어지면서 추가 회사채 발행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 기존 채권보다 더 높은 금리로 발행하더라도 레고랜드 사태 이후 회사채 발행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콜옵션 행사 시기에 추가자본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
이는 레고랜드 사태와는 다른 방향으로 한국의 채권시장에 악영향을 줬다. 레고랜드 사태의 경우 그간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채권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채권시장의 가격 및 투심이 하락한 상황인데, 흥국생명의 경우 민간 부문의 금융사마저 그간의 암묵적인 관행을 깨면서 신뢰를 낮추게 된 셈이다.
일련의 사태는 외화 채권 시장에서 한국물의 거래를 급격히 위축시켰다. 내년 8월 조기 상환일이 도래하는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이달 4일 기준 1주일 전보다 8.9% 하락했으며, 같은 기간 내년 10월 조기 상환일을 맞는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 가격도 11.1%나 급락했다.
또한 채권의 부도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경우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KB, 신한,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금융지주의 평균치는 75bp(1bp는 0.01%포인트)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말 22bp에 비해 11개월 만에 세 배 이상 급등한 셈이다.
국가신용도의 위험 수준을 보여주는 CDS 프리미엄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말한다. CDS 프리미엄이 높을 수록 채권을 발행한 기관이나 국가의 신용위험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표가 상승하면 우리나라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려 정부의 외화자금 조달 비용을 높을 뿐 아니라 해외자본의 유출과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업권에선 이같은 사태 이후 금융당국의 대응도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이미 커진 상태다 보니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에 대한 시장의 충격이 더 크지 않았나”라며 “이 가운데 금융당국이 흥국생명의 미행사에 대해 용인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사태가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
현재 금융당국에선 채권시장 안정을 위한 목소리를 연이어 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7일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상환 사태에 금융당국의 개입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기상환에 대한 스케줄은 알고 있지만 시스템적으로 사전 개입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면서도 “최근 단기자금시장에서 자금조달 애로가 있었지만, 금융시스템 전반의 유동성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시장 상황이 워낙 민감하다보니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며“항상 플랜B(대안)를 마련해 더욱 기민하게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으로 금융위원회는 시중은행들이 전면에 나서 자금시장 안정화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이에 5대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95조원 규모의 민간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