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되면서 금융권에 ‘낙하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CEO교체 시즌인 만큼 기존 인물 대신 친(親) 정부 인사들이 정권을 등에 업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권 CEO 4명 가운데 2명이 감독당국의 조치 이후 조기 사퇴하거나 연임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던 CEO들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지완 BNK금융지주 회장 등 4인이다.
먼저 김지완 회장은 임기를 5개월 남겨두고 조기 사퇴했다. 그는 지난달 11일 국감에서 경남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이 김 회장의 아들 특혜 의혹을 제기한 후 일주일만에 금감원이 현장조사에 들어오자 사퇴를 결정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으로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경제고문을 지낸 전 정권 인사다.
특히 BNK금융 이사회는 김지완 회장 사임 전인 지난 4일 이사회를 통해 회장 후보군에 외부인사를 포함시킬 수 있도록 경영승계규정을 개정해 낙하산 인사 논란에 불을 붙였다.
손태승 회장은 금융위원회가 1년 6개월만에 금감원의 제재안을 확정하면서 법적 소송 없이는 연임이 불가능해졌다. 금융위는 지난 9일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 등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발견된 위법사항에 대해 퇴직 임원 문책경고 상당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직무 정지-문책 경고-주의적 경고-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이 중 문책 경고 이상부터 중징계에 해당한다. 금융사 임원이 중징계 이상을 받게되면 3∼5년 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된다. 단 현재 수행중인 임기는 보장된다.
금융위의 제재 결정에 앞서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두고 금융권에는 온갖 루머가 확산됐다. 그 중 손 회장이 전 정부 인사로 분류됐다는 루머와 함께 관출신 친정부 인사가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도전할 의사가 있다는 루머도 있었다. 루머가 돌던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제재로 손 회장의 연임이 소송없이는 불가능해지자 금융권애서는 루머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퍼지고 있다.
여기에 농협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전통적으로 농협중앙회가 정부와의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을 부여해와 교체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수협은행은 재공모를 통해 후보를 추가하고, 기업은행은 차기 행장이 이미 내정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와 금융권에서는 낙하산 우려를 감추지 못 하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잘못이 있으면 제재와 징계가 당연한 것이지만 당국의 제재와 징계가 결정된 시점이나 검사에 들어간 시점이 적절치 않다”며 “이는 낙하산 인사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11일부터 본격적인 차기회장 선임 절차에 들어가는 신한금융지주만 그나마 조용한 편이다. 신한금융의 경우 재일교포 주주들이 안정감을 가지고 포진해 있어 외풍에도 비교적 흔들림이 적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노조는 “금융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모피아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로 몸살을 앓아왔다. 특히 보수정권은 국정통수권자의 최측근들을 금융지주 회장에 앉혀 관치금융을 밀어붙이는 도구로 삼아왔다”며 “윤석열 정부 역시 금융권 첫 인사였던 산업은행 회장 인선에서 보듯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낙하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융회사 CEO에게는 오랜 세월을 통해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결합된 전문성, 높은 도덕성,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구성원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그리고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노동자를 존중하는 자세 등이 요구된다”며 “이는 정치인, 모피아 관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권의 낙하산 우려를 일축했다. 그는 전날 징계에 “정치적 외압은 있지 않다. 혹여 향후 어떤 외압이 있더라도 제가 정면으로 그에 맞서고 싶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 같은 경우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서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그런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당사자(손태승)께서도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사실상 손 회장의 자신 사퇴를 압박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이 외압을 부인하고 있지만 손 회장에게 현명한 판단을 하라는 것은 그만 두라는 이야기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