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10년 넘도록 거래하던 OO은행에서 최근 금리 인상 소식을 통보받았다. 기존 6~7%였던 대출 금리가 10% 중반까지 올라간다는 통보였다. A씨는 대출금리가 너무 높다고 항의했지만 OO은행은 A씨에게 더 낮은 금리 적용은 어렵다면서, 변경된 대출 금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다른 은행을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경기 악화와 함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은행권의 디마켓팅(demarketing)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은행권의 디마켓팅은 업황전망이 어렵거나 재무상황이 악화된 중기를 대상으로 대출 금리를 올려 스스로 다른 거래처를 알아보도록 압박하는 전략을 말한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들의 중기대출 취급이 깐깐해지고 있다. 은행들의 대출취급 태도를 보여주는 대출행태서베이를 보면 중소기업대출 태도지수가 2분기 6에서 3분기 마이너스(-) 3으로 떨어졌고, 4분기에도 -3을 유지했다. 마이너스 지수는 대출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은행이 완화하겠다는 은행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기가 기존대출을 연장하거나 신규대출을 받을 때 거절될 가능성이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진다.
은행권이 중기대출을 보수적으로 보는 배경은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중기의 영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어서다. 특히 내년 업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비단 중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OECD는 21일 발표한 'OECD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1.8%로 0.4%p(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1.8%)도 내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대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중기대출 금리도 치솟고 있다. 2020년 10월 2.81%에 불과했던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중기 대출금리는 지난 9월 4.87%로 올랐다. 이는 2014년 1월(4.88%) 이후 8년 8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중기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디마케팅 우려까지 나온다. 은행권에서 이익이 안 될 것으로 보이는 거래 중소기업을 이례적으로 다른 은행으로 밀어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우려다. A씨의 사례처럼 금리를 고객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올려 고객이 스스로 거래를 중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
A시중은행 직원은 “디마케팅은 은행권의 보편적인 전략”이라며 “특히 OO은행이 은행권에서 디마케팅 전략을 잘 구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최근 OO은행 고객이 직접 찾아왔다”면서 “금리가 너무 올라 새 거래 은행을 찾고 있는 손님이었다”고 말했다.
B시중은행 관계자도 “국내 기업대출은 파이싸움이다. 신생기업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적 결정에 따라 금리를 내려 고객을 유치하거나 경기 상황이나 은행의 대출 취급 한도(capacity)에 따라 디마케팅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대출은 신용평가를 통해 금리가 결정된다. 정량평가는 재무재표 등을, 정성평가는 CEO 또는 업황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보는데 은행 마다 결과가 다르다. 정답이 없는 평가”라며 “산업별로 업황 악화가 예상된다면 정성평가에서 금리를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중소기업들은 이러는 사이 은행을 상대로 대출 금리를 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국내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현재 가장 필요한 금융 정책으로는 ‘금리 부담 완화 정책’이라는 응답이 46.4%로 가장 많았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기준금리보다 가파르게 오르는 대출 금리로 인해 고금리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차보전과 저금리 대환대출과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금융 지원과 금융권의 과도한 대출금리 상승 자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고금리 애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A씨 사례의 OO은행은 금리 조정을 통한 중기 밀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해명했다. OO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대출금리를 인위적으로 올릴 수 없다”며 “금리 산출 내역을 기업에 다 공개해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10% 중반대 금리가 나왔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재무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었거나 담보 등에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여신관리를 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