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이라는 낙인에 단돈 30만원을 빌릴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는 이들을 향해 일해서 스스로 갚아 나아가라고 채찍질한다. 다만 이들이 어떻게 신용불량자가 됐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도 엉성하기는 마찬가지다.
30일 쿠키뉴스가 만난 38세의 이 모씨는 현재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다. 그는 8년 전쯤 남편과 헤어진 후 지금까지 홀로 아이를 키워나가고 있다. 남편과의 이혼 후 급작스러운 홀로서기는 그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남편이 잘못을 반복해서 정말 못 참겠다고 말하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짐을 싸놓았어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저희가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버렸어요. 이혼하면 집 보증금을 뺏기겠다고 생각했는지 저 몰래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더라고요. 그래서 얼떨결에 아이랑 둘이 나오게 됐어요”
“당장 갈 데가 없어서 간 곳이 인천의 무보증 원룸이었어요. 보증금 없이 월세 50만원의 원룸이었죠. 그러다 돈이 부족해서 대출을 알아봤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일을 못 하는 상태라 은행 신용대출이든 제2금융권이든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게 됐죠”
갑자기 홀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당시 그에게 정부 지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주민센터를 찾아가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는데 아직 서류상으로 이혼 상태가 아니라고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어요. 아이 기저귀랑 분윳값, 어린이집 비용은 계속 나가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대부업체를 이용했죠. 이혼 후 남편 쪽에서 받은 양육비도 전혀 없어요”
이 씨는 직장을 구해 받은 급여로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홀로 부담해야 하는 육아는 그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았어요. 이력서 내는 곳들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조차도 거의 없더라고요. 어렵게 구한 일자리도 9시, 10시까지 야근을 하다 보니 아이가 있어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여기에 대부업체의 높은 이자는 결국 그를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에도 육아와 직장의 충돌은 계속해서 그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초등학교의 긴급 하교 조치는 그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없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모두 강제 하교시켰어요. 심할 때는 한 달에 두세 번씩 하교 조치했는데 부모가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으면 하교도 시켜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일하다 갑자기 애를 데리러 달려가야 했어요”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됐죠. 지금은 모자원에서 거주하며 공공근로로 버티고 있는데 한 달 꽉 채워도 100만원을 못 받아요. 거기서 이자 30~40만원 내고 남은 돈으로 아이랑 생활하고 있어요. 그나마 지금은 공공근로를 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1년 이상 계속할 수 없어서 내년이 걱정이에요”
빚과 육아에 지친 이 씨가 원하는 것은 일할 수 있는 환경과 급할 때 소액이라도 빌려달라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가정 양립이라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혼자 육아를 하면서 일하는 것은 대안이 없어요. 애를 맡길 때가 없어요.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되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돼요. 제 주변에 있는 한 부모 상황들도 다 똑같아요”
“주민센터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긴급 지원 제도가 있는데 지원예산이 남아있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확인 절차 거치면 보통 받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야 3개월이에요. 당장 급해서 신청했는데 3개월을 기다릴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다른 지원도 고정적인 소득이 없으면 받을 수가 없어요”
이 씨와 같은 신용불량자는 지난해 6월 기준 국내에 77만명이 넘어선다. 앞으로 이러한 신용불량자는 코로나 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와 함께 급증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신용불량자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커지는 시점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